[오션 뷰] 한국 해운산업, 디지털 혁신에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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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환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

요즘 주식시장에서 ‘흠슬라(HMM+테슬라)’로 불리는 해운주들의 인기가 뜨겁다. 해상운임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선사들의 영업이익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국내 최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암울하기만 했던 한국 해운에 순풍이 부는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해운 시황의 특징은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길다는 것이다. 잘 나갈 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원인은 해운 시황 예측을 잘못한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당시 한진해운은 해운 시황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여 높은 용선료를 주고 장기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이후 시황이 급락하며 영업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혹자는 한진해운 파산을 당시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정부와 국책은행의 해운업에 대한 이해 부족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업의 흥망은 어디까지나 최고경영자의 판단과 능력에 달려 있다.

해운업, 호황은 짧고 불황 긴 게 특징

선사들 자생력 확보·미래 대비 절실

디지털 격변의 기회 적극 활용해야

빅데이터·AI·블록체인 기술 접목을

한진해운 파산 2년 후 정부는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핵심 내용은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여 경쟁력 있는 선박과 안정적인 화물 확보를 통해 한국 해운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올 4월 해양수산부는 해운산업 매출액과 컨테이너 선복량이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선대 확충은 대부분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옛 현대상선)에 집중적으로 지원한 초대형선 20척 건조에 따른 결과이고, 매출액 증가 역시 코로나19 이후 세계 해운시장 호황에 힘입은 바 크다. 물론 HMM이 초대형 친환경 선박을 선제적으로 확보하여 세계 8위권 선사로 부상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해운정책이 선사들의 선박 확충이나 화물 확보와 같은 일차원적인 정책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정부 지원정책이 자칫 해운기업들의 자생력 확보 노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세계 해운산업의 가치사슬을 분석해 보면 우리나라는 조선 분야를 제외하고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선박 건조(조선)는 한·중·일 3개국이 세계시장의 90% 이상 점유하고 있지만, 선박 운영(해운)은 덴마크(머스크), 스위스(MSC), 프랑스(CMA-CGM), 중국(COSCO China) 4개국이 세계 컨테이너 시장의 58%를 점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부가가치 분야인 선박금융, 선박중개, 보험, 컨설팅 같은 해사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는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헐값에 배를 만들고 화물을 운송해 수익을 올리는 반면, 유럽 해운강국들은 고수익 사업 분야를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선사들 역시 경쟁 심화와 화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해상운송, 항만 운영, 내륙운송에 이르는 전 구간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물류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머스크의 철도운송사업 확대와 CMA-CGM의 항공운송사업 진출이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 해운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방안은 현재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격변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해운물류 분야는 다량의 화물을 취급하고 여러 운송수단과 장비를 사용하는 업무 특성상 대량의 데이터가 발생한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한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디지털 기술은 해운물류산업에 최적이다. 2018년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가 IBM과 손잡고 블록체인 기반 글로벌 물류 플랫폼인 ‘트레이드렌즈’를 출범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도 향후 자율운항 선박과 스마트항만을 연계한 플랫폼을 구축하여 선박 운항 및 항만 운영의 최적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험, 금융 등과 연계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할 경우 상대적으로 낙후된 해사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의 발전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운기업들이 전통적 사업방식의 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디지털 혁신가로 재탄생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해운업계는 보수적이어서 정보 공개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출이 적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 역시 해운기업들의 디지털 혁신역량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지원, 물류와 디지털 기술을 겸비한 전문인력 양성에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선사들이 디지털 변혁에 적극 뛰어들 수 있는 운동장과 마중물이 필요하다. 강한 자나 똑똑한 자가 아닌, 변화에 적응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말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변혁기에 우리 해운산업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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