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23. 자연의 본질에서 투영되는 구상과 추상 사이, 하인두 ‘해조음’
하인두(1930~1989)는 1957년 김창열, 장성순 등 7명의 작가와 ‘현대미술가협회’를 설립하고, 그해 5월 첫 번째 그룹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재건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이후 박서보 등이 합류했고, 이는 서구 앵포르멜 성향을 벗어나 한국적 추상회화 시대에 접어드는 계기가 됐다. 이 시기 하인두는 한국 전통의 형상성이나 불교사상에서 도출된 개념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불교의 단청과 만다라의 조형성을 합체하고, 서구 종교의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을 색채평면으로 재탄생시키는 ‘상대성’과 ‘유사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업은 하인두의 상징적 색채로 자리잡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만다라’ 시대를 펼친 것은 1970년대 말부터이다. 이 시기부터 불교적 관념의 세계와 동양적 사유의 조형적 요소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굵은 선과 짙은 색채를 통해 무한히 확장하는 회화 작업들로 이어진다.
작업의 본질을 자연에서 찾는다는 것은 하인두가 기록한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구상적 요소에서 만들어 낸 추상 작업이지만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작가 노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연을 통해 그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본질을 분석하고 또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규칙, 또는 보편성 속에서 색채와 형태의 조화를 찾아 나의 삶과 일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거나 부정하기도 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경계가 없는 현실과 이상을 오가며 다양한 표현방식이 내 화폭에 담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하인두와 류민자는 부부 화가로 알려져 있다. 류민자 역시 보살이나 불상과 같은 사찰의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해 조화로운 감각으로 이상적 세계를 연출하는 작품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상호 정신적인 교류를 통해 감성을 쌓아가는 동반자였다. 또 ‘작품에 대한 정신을 공유하는 서로였다’고 이야기한다.
작품 ‘해조음’은 단순한 선과 푸른색만으로 완성된 단색조의 작품이다. ‘만다라’ 시리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선은 또 하나의 굵은 선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들을 잉태한다. 도상학적인 아이콘으로 독창적인 조형 요소들이 대칭적인 방식으로 배열되기도 했으나 ‘자유분방함’을 조건으로 보여준다. 간혹 드러나는 여백으로 인해 푸른색의 투명감이 더 살아나고, 한국적 감성과 스테인드글라스의 감성을 오버랩시킨 작품이다.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