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미술계 목소리 외면한 문체부…‘이건희 기증관’ 일방적 행보 계속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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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문체부 장관, 어제 문체위 전체회의 참석
“이건희 기증관, 정치적 결정 사안 아냐” 밝혀
계속되는 지역·미술계 목소리 외면…반발 거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과 미술계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가칭·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 철회 요구에도 일방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어 논란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이건희 기증관 관련 질문을 받고 “정치적으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다”고 답변했다. 황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문체위 소속 김승수 국민의 힘 의원이 이건희 기증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문체부의 서울 편향성과 불공정성을 지적하자 나온 것이다.

이날 김 의원은 “이건희 기증관과 관련해 지자체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며 “결과만 놓고 보면 이미 짜여진 각본이나 마찬가지다. 대국민 사기극, 지방 우롱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체부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와 용산구 부지를 이건희 기증관 입지 최종 후보지로 압축해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부산과 대구, 세종, 수원 등 유치를 희망했던 지자체들이 크게 반발하며 입지를 재선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걸 언급한 것이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이 지난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이 지난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 가중시키는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방침을 철회하라"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해운대구 제공

김 의원은 또 이건희 기증관 입지 선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활용위원회) 구성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활용위 구성 전문가들을 보면 지역문화를 대변할 사람이 거의 없다. 지방문화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유치 결정을 철회하고 수도권을 배제한 재공모를 하자”고 했다. 또 “이번 정권에서 부담이 되면 차기 정부로 넘기라”고 했다.

이에 황 장관은 “이건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며 재고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황 장관은 “국민 문화 향유권을 극대화시키라는 기증자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지역의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민 문화 향유권 확대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 장관은 또 “지역균형발전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안타깝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기증품뿐 아니라 리움에 있는 작품을 포함해 지방에서도 국립 거점 박물관 등을 통해 상시적으로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하는 보완책을 반드시 병행해서 만들겠다”고 했다.


대구시의회가 '이건희 기증관'(가칭)의 설립 후보지를 서울의 용산과 송현동으로 압축한 문화체육관광부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8일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서 열린 '대구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정부 결정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시의회가 '이건희 기증관'(가칭)의 설립 후보지를 서울의 용산과 송현동으로 압축한 문화체육관광부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8일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서 열린 '대구시의회 부활 3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정부 결정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황희 장관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한곳에 모아서 전시하는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 기증관 건립을 발표하며 공모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로 “지자체의 유치 경쟁이 과열되고, 안 됐을 때 더 허탈감이 클 것”이라고 말해 지역의 반발을 샀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역 국민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지역 무시와 오만 행정의 극치”라고 비판했고, 권영진 대구시장도 “서울 집중화 현상이 심각한데 기준과 절차, 원칙도 없이 결정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차라리 다음 정권으로 미뤄 건립 지역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맹폭했다.

부산예총·부산민예총·울산예총·경남예총 등 부울경 예총·민예총, 부산 시민단체도 문체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철회하고 공모 절차를 통해 입지를 재선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미술계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미술계 인사 677명으로 구성된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12일 입장문을 내고 “새롭게 건립될 시설의 성격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비전과 미션조차 분명치 않다”며 “정체불명의 새로운 통합전시관 건립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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