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일꾼' 성적표] 2. 표절해도 의정비는 인상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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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베껴도 성과급은 미리 셀프 인상… 실적 평가는 없었다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올해 30살이 된 지방의회는 사람으로 치면 스스로 행동하고 책임지는 건장한 청년이다. 하지만 부산 기초의회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을 위한 맞춤형 조례가 입법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다른 기초지자체 조례를 관례적으로 베꼈다. 선언적 내용에 그치거나 사업 범위가 모호한 조례는 손쉬운 ‘복제 대상’이었다.

다른 지자체 조례를 복제하는 등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기초의원들은 꾸준히 급여를 챙겼다. 심지어 스스로 매년 성과급 개념인 ‘월정수당’을 인상해왔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시의적절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의정비 결정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현실 무시 상위법 복제 재생산

급하게 발의 선언적 조례 양산

1인당 연봉 3729만~4460만 원

자체 위원회 열어 월정수당 결정

“의정비 4년마다 결정 평가 부실

심의위 매년 개최 등 제도 개선을”


■주민 위한 지역 맞춤형 조례

2017년 2월 부산 남구의회가 제정한 ‘주한미군 기지 및 공여 구역 환경 사고 예방 및 관리 조례’는 부산 16개 구·군 중 오직 남구만 가진 조례다. 이 조례에 의해 남구청은 주한미군 기지 인근에서 발생할 환경오염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만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조사 등 계획을 시행하도록 되어있다. 이같이 다소 생소한 내용의 조례가 제정된 건, 남구 내 부산항 8부두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때문이다. 2017년 주한미군이 이곳에 생화학전 방어체계 구축 프로그램인 ‘주피터(JUPITR) 프로젝트’ ‘센토(CENTAUR)’ 등 일환으로 생화학물질을 반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높았다. 남구청 환경위생과 관계자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등 영향으로 실제 조사 등 시행에 제약이 따르지만, 해당 조례로 인해 환경사고 발생 시 기초지자체가 일부 개입하고 피해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고유 상권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도 있다. 부산 중구에는 국내 유일의 헌책방 거리인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피난민이 미군부대가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을 팔며 조성된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꼽힌다. 하지만 온라인 대형 서점의 등장으로 헌책방이 줄줄이 문을 닫는 등 위기를 맞자 이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2018년 부산 중구의회는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사실상 보수동 책방골목을 지원하기 위한 맞춤 조례다. 중구청은 해당 조례에 근거해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서점의 도서목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용역을 이달 착수했다. 중구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지역 내 문화유산이자 상권인 보수동 책방골목을 살리기 위해 해당 조례를 근거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사정도 모르고, 無예산도

반면 기초의원들이 제대로 현지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례를 복제하는 경우도 있다.올 2월 연제구는 ‘골목형상점가 지정 및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내용은 ‘면적 2000㎡ 이내에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 30개 이상 밀집한 곳’을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하고 이를 지원하겠다 것이다. 같은 내용의 조례를 동래구와 해운대도 이어 제정했다. 하지만 이 중 현장 조사를 통해 지자체 고유의 '골목형 상점가' 기준을 마련한 곳은 해운대구가 유일하다.

이외 다른 지자체는 지자체 여건을 고려해 별도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상위법 기준을 그대로 사용했다. 해운대구 의회만 같은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면서도 유일하게 골목형 상점가 지정 기준을 완화하는 등 현지화를 거쳤다. 상위법 기준을 그대로 갖다 쓴 일부 지자체들은 뒤늦게 용역 등을 통해 실정에 맞는 골목형 상점가 기준을 제정하기 위해 조례 개정을 검토 중이다.

또한 조례 복제만 해두고 예산 반영조차 되지 않아 선언적 의미에 그친 경우도 잦았다. 대표적인 예가 ‘재능기부 활성화 조례’다. 2013년 전국에서 울산시가 최초로 발의했다. 산발적인 재능 기부 활동을 체계적이고 제도적으로 이뤄지도록 지자체가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광주시 서구, 인천시 연수구 등 전국 곳곳에 복제된 이 조례는 2015년 10월 부산에서 금정구가 처음 제정했다. 이후 해운대구(2016년 4월), 서구(2016년 9월), 사하구(2017년 2월) 등 부산 내 지자체들 발의로 이어졌다. 하지만 ‘재능기부를 활성화하겠다’는 조례에 근거해 별도로 예산이 반영되거나 사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해당 조례가 제정된 지자체들은 “지역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관련 사업을 지원 중”이라고 해명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의 한 기초의원은 “조례 입법 자체에 목적을 두고 급하게 발의를 하다 보면 조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며 “게다가 예산이 들어가는 조례는 집행부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보니, 예산이 필요 없는 선언적 조례들을 양산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혈세로 성과 없는 ‘성과급 잔치’

이처럼 기초의원들은 조례를 복제하는데 그치는 등 제대로 의정활동을 해내지 못했음에도 꾸준히 급여를 올려 받았다. 당연히 모두 국민 혈세다. 부산 기초의원 182명이 2019년부터 내년까지 4년간 받는 월정수당은 약 203억 원이다. 의정활동비까지 합치면 300억 원이 넘는다. 의원 1인당 적게는 3729만 원(중구), 많게는 4460만 원(해운대구)의 연봉을 타갔다.

심지어 의원들 스스로가 연봉 인상을 결정하고 있었다. 의원들이 받는 급여는 크게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으로 나뉜다. 전국 대부분 기초의원은 동일한 의정활동비(연 1320만 원)를 받는다. 반면 월정수당은 의원 스스로 위원회를 열어 금액을 결정한다. 의정 실적이 평가 기준에 들어가 있어 ‘성과급’ 개념에 가깝다. 부산 16개 구·군의회 중 13곳은 2018년 의정비심의위원회에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월정수당을 직전년도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동일하게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 의원이 매년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동일하게 월정수당을 인상한 배경에는 행정안전부의 어처구니 없는 지침에 있다. 2014년 6월 지방자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매년 열리던 의정비 결정 주기는 4년에 한 번으로 단축됐다. 행안부는 “의정비 결정 과정에서 갈등과 행정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입장이지만, 직전 회기 의원들의 실적을 평가해 새로 당선된 의원들의 4년간 의정비를 결정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2018년 부산 16개 구·군에서 열린 의정비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의회가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데 의원들 실적을 우리가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기장군의회) “2~3년 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월정수당을 미리 정하는 것은 보수적으로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연제구의회)라는 위원들의 토로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의정비심의위원회를 필요할 경우 매년 개최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광태 창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4년에 한 번 의정비심의위원회 개최를 제한하면 시의적절하게 의원들의 의정활동 실적을 평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 ”심의위를 매년 개최하고 당선 2년 차부터 이를 적용하는 등 제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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