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도시재생 위기, ‘주민 자치’ 정신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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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미국에서 대학원에 재학하던 시절 지역 마을신문에 흥미로운 광고가 실렸다. 지역 내 소수 민간 흑인 커뮤니티에서 이들을 옹호해 줄 ‘마을계획가(neighborhood planner)’를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업무는 마을계획 수립 등 연방 커뮤니티 재생펀드를 받기 위한 전문적 노력과 주민교육, 모임 지원 등 주민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예전 관 주도의 하향식 도시계획

2000년 이후 도시재생 개념 전환

최근 ‘지역 재활성화’에 실패 비판

‘주민참여 부재’ 최고 한계로 꼽혀

성과주의 탈피 주민 역량 강화해야

지역 공동체의 건강한 선순환 가능

그들의 현실이 마냥 부러웠다. 1980~90년대 당시 우리나라 현실은 철저한 관 주도의 하향식 도시계획이었다. 도시재생도 ‘마을’ 개념이 없는 아파트촌 건설 등 물리적 개발 중심이었다. 마을자치 운동도 막 시작하던 시기여서 초기 마을공동체에는 몇몇 사회운동가의 ‘열정 페이’만 존재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도 물리적 개발을 넘어 사회·경제적 발전을 포함하는 종합적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최근 부산과 서울의 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새 시장들은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행정 조직에서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을 없앴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실을 균형발전본부로, 부산시는 도시재생정책과를 창조도시과로 각각 폐지·변경했다. 현재도 중앙정부의 역점 사업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고, 지자체에서도 다수의 관련 사업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최근 서울 등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비판받는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사실 근래 부동산 문제 이전에도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비판은 계속 제기돼 왔다. 요지는 수천억 원을 들인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가 원래 취지였던 ‘지역 재활성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전국 관광 명소가 된 부산의 대표적 도시재생 사업 지역이 이후 10년 동안 30% 이상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 도시재생 사업에 적용된 ‘앵커 시설’(도시재생 거점 공간 역할)도 주민 생활과 매우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혈세 낭비’, ‘페인트칠 사업’이라는 원색적 비판을 면치 못했다.

얼마 전 만난 한 경제정책 전문가는 이 사업을 “국가 내 대표적인 비효율적 사업 중 하나로 폐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물며 최근 전국 부동산 가격 폭등도 주택 공급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도시재생 사업에 그 책임을 돌리는 형편이니, 도시재생은 지금 사면초가 상태에 몰려 있다.

수도권 중심주의로 인한 지방 소멸 시기에 지방 인구 감소나 수도권 부동산값 폭등의 책임을 모두 도시재생(특히 지방의 도시재생 사업)에 돌리는 건 분명 과한 측면이 있다. 이보다 도시재생의 근본 위기는 다른 지점에서 나온다.

현재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는 주민이나 지역 활동가, 전문가 등 내부 이해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주민참여 부재’이다. 성과 압박을 받는 사업 담당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전문가와 관련 사업 수행 업체들이 마을의 비전과 계획, 설계 등 주요 사항을 주로 진행하는 주체가 된다. 이게 ‘주민도 모른 채 사업이 진행된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관 주도의 성과주의’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는 비판이다. 주민 참여가 없는 이러한 사업은 결국 중단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이 전문가 사이에서도 나온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관 주도를 벗어나 ‘주민 자치’라는 원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급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풀뿌리 민주주의, 자치분권이라는 주민 자치 정신에 입각한 도시재생의 재활성화가 필요하다.

마을공동체 운동과 주민자치회 안착에 관한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마을공동체는 ‘상호 대등한 관계 속에 마을의 일을 주민이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민자치 공동체’를 말한다. 주로 소생활권 단위나 마을 단위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부산은 이미 2012년 마을공동체 조례 제정으로 현재 446개 마을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를 지원할 주민자치회 구성을 위한 제도적인 움직임도 최근 부산 15개 동에서 시범 사업으로 실시 중이다. 주민자치회 활성화 사업은 생활권 중심의 공공서비스를 민관이 함께 계획·생산·전달하는 소지역 단위 혁신 사업이다. 이러한 혁신적 움직임들이 기존의 물리적 개선 중심의 도시재생과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은 물리적으로 근사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전문가 중심의 용역 사업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보다는 주민 스스로 결정 과정에 참여해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역량 강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주민자치 역량을 갖춘 공동체의 도시재생은 ‘민주주의 학습 공간’의 역할을 하며, 지역 활성화와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으로 선순환할 수 있다. 지역의 운명은 지역민 스스로 결정한다는 주민자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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