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엑스포 스토리 ④] 세계 대표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와 월드엑스포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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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 부산엑스포 유치 응원 연속 기획
엑스포로 영감 얻은 디즈니, 세계 콘텐츠 산업 점령

2016년 공식 개장한 상하이 디즈니랜드. 파리, 도쿄, 홍콩에 이은 네 번째 미국 밖 디즈니랜드다. 부산일보DB 2016년 공식 개장한 상하이 디즈니랜드. 파리, 도쿄, 홍콩에 이은 네 번째 미국 밖 디즈니랜드다. 부산일보DB

세계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놀이동산. 요즘 말로 ‘테마파크’라 부르는 개념은 150년 전 열린 월드엑스포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893년 시카고엑스포는 보고 듣고 즐기는 대규모 공간을 별도로 제공해 성공을 거뒀다. 1.5km에 달하는 ‘미드웨이 플레이선스’ 거리에 음악회와 연극, 서커스가 열리고, 카지노와 식당, 술집이 늘어섰다. 각국의 새 제품과 독특한 문화를 보러 온 이들은 연일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호숫가에 설치된 ‘무빙 사이드워크’는 놀이기구에 타고 테마파크 전체를 감상하는 아이디어의 시초였다.

사실 이는 1867년 파리엑스포 때 센강 주변에 등장한 야외 공원이 확장된 것이다. 파리엑스포에서는 이국적인 국가별 풍물이 가득한 주제관과 공연장, 식물원, 수족관, 대형 조류관 등이 처음 등장했다. 관람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보트, 하늘로 띄우는 열기구도 동원됐다. 여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테마파크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파리에서 시작해 미국에서 터져 나온 엑스포의 상업주의는 서구권 여가 문화의 판도를 바꿨다. 미국에서는 이후 뉴욕 코니 아일랜드와 디즈니랜드로 테마파크 산업이 뻗어나갔다.

특히 엑스포와 월트 디즈니의 인연은 남달랐다. 디즈니의 아버지는 1893년 시카고엑스포 전시장을 지은 노동자였다. 1901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난 월트 디즈니에게 엑스포는 친숙하고 가슴 뛰는 이벤트였다.

할리우드에서 창업한 디즈니는 1928년 대표 캐릭터 미키마우스를 탄생시켰다. 그는 1933년 시카고엑스포가 다시 열렸을 때 미키마우스가 새겨진 상품을 처음 전시했다. 이후 1939년 뉴욕엑스포의 놀이동산과 쇼 형식의 화려한 무대들은 디즈니에게 영감을 줬다.

애니메이션 등 영상 콘텐츠로 성공을 거둔 디즈니는 1955년 비판과 호평 속에서 미국 LA 인근에 디즈니랜드를 개장했다. 그는 1958년 브뤼셀엑스포 때 본격적으로 엑스포에 참여한다. 당시 미국관에서는 디즈니의 ‘아름다운 미국’이라는 360도 스크린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디즈니랜드에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1964년 뉴욕엑스포에 선보인 디즈니의 '작은 세상(it's a Small World)' 전경.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1964년 뉴욕엑스포에 선보인 디즈니의 '작은 세상(it's a Small World)' 전경.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1964년 뉴욕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2년 연속 개최를 고집한 탓에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인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50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끈 배경에는 월트 디즈니가 있었다. 당시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도 뉴욕엑스포를 참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는 뉴욕박람회에서 ‘작은 세상(It's a Small World)’을 처음 선보였다. 펩시가 후원한 유니세프 전시관을 찾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다. ‘작은 세상’의 주제를 담은 동요가 큰 인기였는데, 유니세프의 요청으로 저작권을 신청하지 않아 금방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뉴욕엑스포 기간 동안 1000만 명이 ‘작은 세상’을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은 배를 타고 인형들이 표현하는 다양한 세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이 전시관은 전 세계 디즈니랜드나 디즈니월드에서 지금도 운영 중이다.

유니세프 전시장의 디즈니 '작은 세상' 입구 전경. 유니세프 홈페이지 유니세프 전시장의 디즈니 '작은 세상' 입구 전경. 유니세프 홈페이지

디즈니는 또 뉴욕엑스포 제너럴 일렉트릭 전시관의 회전식 극장에서 로봇이 움직이는 월트디즈니쇼를, 일리노이 주 전시관에서 링컨과 똑같은 모습으로 연설하는 ‘링컨 로봇’을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포드 전시관에는 디즈니의 창의성이 빛나는 ‘매직 스카이웨이’를 만날 수 있었다.

1966년 디즈니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디즈니는 1967년 몬트리올엑스포와 인연을 이어간다. 30분짜리 360도 다큐멘터리 ‘캐나다 67’을 상영했다. 1988년 호주 브리즈번엑스포에서는 엑스포 마스코트 ‘엑스포 오즈’를 제작했다. 호주 오리너구리로 만든 엑스포 오즈는 미키마우스처럼 퍼레이드와 쇼, 공연 등에 모두 등장했고, 500 종류가 넘는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경제적인 성공을 거뒀다.

1964 뉴욕엑스포에 선보인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순간 전시장.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1964 뉴욕엑스포에 선보인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순간 전시장. 디즈니 공식 홈페이지

세월이 흘러 디즈니는 한국 여수시를 제치고 열린 2010년 상하이엑스포와도 인연을 맺는다. 2009년 중국 정부가 상하이 디즈니랜드 건설을 승인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으로 미국의 불참 결정을 뒤집고 상하이 엑스포 참가를 발표했다. 엑스포와 디즈니랜드 유치를 간절하게 희망했던 상하이는 결국 꿈을 이뤘고, ‘포스트 엑스포’ 프로젝트로 디즈니랜드 건설을 이어가며 도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디즈니는 6조 2000억 원 규모의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2016년 개장했다.

엑스포를 성장의 기회로 십분 활용한 디즈니처럼, 2030 부산엑스포는 K팝과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흥과 멋을 어떻게 버무려 세계인의 축제를 이끌어 내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 공동 기획 : (사)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


박세익 기자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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