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기자의 이해 충돌을 대하는 자세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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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에디터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의 미담이 알려졌다. 은퇴한 뒤 후배들의 멘토를 자처해 올림픽 수영 대표팀에 투혼을 불어넣은 훈훈한 사연이 소개되면서다.

〈마이클 펠프스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물결은 도도하다.〉

지난달 16일 자 뉴욕타임스(NYT) 지면에 전형적인 미담 기사가 실렸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을 장기간 격려하고 조언한 덕분에 펠프스의 투지가 후배들에게서 되살아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은퇴 후 멘토 활약 마이클 펠프스와

공동 집필 약속한 기자의 단독 보도

뉴욕타임스 ‘이해 충돌’ 위반 판단

한국 언론 윤리 문제 연일 도마

급기야 징벌적 손배 등 규제 봇물

언론 신뢰 회복 못 하면 미래 없어

흠잡을 데 없는 기사는 뜻밖에 언론 윤리 위반의 구설에 휘말렸다. 워싱턴포스트가 펠프스와 NYT 스포츠 전문 카렌 크라우스 기자 사이의 개인적 이해 관계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NYT가 이를 인정하고 해당 기자를 취재에서 배제하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사달이 난 까닭은 크라우스와 펠프스 사이 공동 출간 계획 때문. 크라우스 기자는 은퇴 후의 활약상을 공동 집필하기로 한 사실을 편집국에 알리지 않았다.

해당 기사의 인터넷판 도입부에는 “보도 이후에야 공동 집필 계획을 알았다. 미리 알았다면 기사 작성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편집자 주가 붙었다. 그럼에도 비판이 이어지자 NYT 대변인은 “분명한 이해 충돌”,“중대한 판단 착오”라고 거듭 사과했다.

NYT 윤리 강령은 ‘보도 대상 인물을 위한 대필이나 공동 집필’을 금지한다. 이 밖에도 객관성, 중립성 원칙을 벗어나 취재원에 치우친 기사를 작성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관계에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보도 배경을 놓고 이해 관계를 의심 받지 않겠다는 취지다. 달리 말하면 기사와 언론사의 신뢰를 지키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다짐이다. 이 같은 저널리즘에 대한 진정성이 온라인 구독자 690만이라는 경이적인 성공의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NYT의 이해 충돌 대처 방식을 접하면서 사뭇 다른 한국의 언론 풍토를 돌아보게 된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원칙이 있긴 하나 취재원과 한통속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다. NYT 사례와 반대로, 기자가 스포츠 스타와 특수 관계라는 것은 한국의 신문사 편집국에 호재로 받아 들여질 터. 취재원과의 관계를 되레 장점으로 부각해 ‘단독’ ‘속보’를 쏟아낼 것이다.

취재원과 지켜야 할 윤리에서 가장 흔하게 상충되는 것이 정치적, 경제적 이해 관계다.

신문사 논설위원이 청와대나 유력 대선 후보의 ‘입’으로 직행하는 것은 이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됐다.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친다. 이는 진영의 논리에 갇힌 정파적 보도가 한국 언론의 신뢰 자산을 갉아먹은 것과 무관치 않다.

기자가 지탄을 받는 사건의 장본인이 되어 취재 대상이 되는 것 만큼 낯 뜨거운 일이 없다.

사업가 행세를 하는 사기꾼에 속은 언론사 간부 여럿이 향응을 받은 것이 들통 나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성매매 기사를 보도하면서 사건과 무관한 개인을 삽화로 넣거나, 경찰을 사칭한 강압적 취재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연간 수백 억 원의 예산 지원을 받는 통신사가 돈을 받고 기사형 광고를 포털에 배포했다는 비판을 받자 부랴부랴 기사를 대거 삭제한 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씁쓸한 풍경이다.

언론 윤리의 저하는 전방위적이다. 한국 언론이 서 있는 모습이 위태롭기만 하다.

급기야 각종 규제책이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정정보도 1면 게재…. 국회에 언론 관련 규제 법안이 봇물을 이룬다.

언론의 자유와 대칭 되는 개념으로서의 언론 규제책이 구가되는 시대라니! 언론 스스로 자초한 측면에서 무참하다. 실수를 반복했고 제대로 시정하지도 않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가짜 뉴스는 단죄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론 규제가 능사가 될 수 없다. 규제로 언론 개혁을 이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미국 상·하원에서는 ‘지역 뉴스 미래 법안(Future of Local News Act)’이 공동 발의됐다. 이에 발맞춰 하원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등 대형 IT 플랫폼의 문어발 사업 확장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놨다. 전통 언론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국가 차원에서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언론이 숙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공동체를 통합·유지하는 핵심 공공재라는 신념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고품질의 저널리즘 육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대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언론 스스로 저널리즘의 본령으로 돌아가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규제나 지원책은 그 다음이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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