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수주의 역설?…연이은 잭팟에도 상반기 조 단위 적자
조선 3사 후판 가격 상승에 1조 6000억 손실충당금 설정
수주 물량 수익성 악화…선가 상승·수주 경쟁력 저하 우려
삼성중공업이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1분기 5068억 원에 이어 2분기에도 매출 1조 7155억 원에 영업이익 적자 4379억 원을 냈다. 작년 상반기 수주 절벽 후유증이 여전한 데다, 올해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 상승으로 최근 1년 사이 수주한 물량의 수익성이 악화한 탓이다. 사진은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조선소. 부산일보 DB
코로나19 파고를 넘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에 진입한 한국 조선 빅3가 연이은 ‘수주 잭팟’에도 좀처럼 웃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작년 상반기 수주 절벽 후유증이 여전한 데다, 올해 하반기 조선용 후판 가격 상승으로 최근 1년 사이 수주한 물량의 수익성이 뒷걸음질 쳤다. 일부 저가 수주 물량은 만들수록 손해라, 최근의 수주 릴레이가 악화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선가 상승에 따른 수주 경쟁력 저하로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21년 2분기 잠정 경영실적 공시를 통해 매출 1조 7155억 원에 영업이익 적자 4379억 원을 냈다고 1일 밝혔다. 1분기 적자(5068억 원)까지 합치면 상반기 적자 규모는 9447억 원으로 늘어난다.
주요인은 강재 가격 인상에 따른 생산 원가 상승이다. 앞서 주요 철강사들은 철광석, 연료탄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조선용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소비량 증가 등을 이유로 강재가 인상을 예고했다. 앞선 상반기 1t당 10만 원 인상한 철강사들은 하반기 40만 원을 더 올린 t당 115만 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작년의 2배에 가까운 단가다.
조선사들은 주로 ‘헤비테일(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으로 수주 계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수주가 실적에 반영되기까진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 소요된다. 그런데 건조 비용의 20%에 달하는 후판 가격 상승 폭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부산일보 DB
조선사들은 예정 원가 변화가 예상되자 수주잔량 점검 후 예상 손실에 대해 보수적으로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했다. 삼성중공업은 2분기 3720억 원 상당을 반영했다. 현대중공업도 8960억 원을 충당금으로 잡았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3300억 원 상당을 선 반영할 예정이다. 조선 3사를 통틀어 최소 1조 6000억 원의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한 셈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최악의 수주 가뭄을 겪었던 조선업계는 하반기 주력 선종인 고부가 LNG 운반선 발주가 재개되며 반등에 성공했다. 연말 몰아치기 수주에 성공하며 중국을 제치고 2018년 이후 3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극복에 따른 세계 경기 회복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상반기 2402만 CGT의 신조선 물량이 쏟아졌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824만 CGT보다 192%나 증가한 것으로 2014년 이후 7년 만에 나온 최고치다.
이중 한국이 1047만 CGT(260척, 44%), 중국이 1059만 CGT(389척, 44%)를 쓸어 담았다. CGT는 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해 산출한 단위다. 가격이 비싼 선박일수록 값이 크다. 업계에선 수주 척수보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을 평가한다.
덕분에 현대중공업은 이미 올해 목표를 초과하는 물량을 확보했다. 삼성중공업은 업황 회복세를 고려해 수주목표를 당초 78억 달러에서 91억 달러로 상향조정하고도 현재까지 74%를 채웠다. 대우조선해양도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이슈로 어수선한 와중에 61.3억 달러어치를 수주하며 목표치(77억 달러)의 80%를 달성했다.
전망도 밝다. 국의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가 발표한 ‘Clarksons Research Forecast Club’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발주량이 작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 중장기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한해 1800척(4000만 CGT)에 달하는 물량이다.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조선업 전망은 밝다. 2023년부터 2031년까지 연평균 발주량이 작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 중장기 호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관건은 가격 경쟁력이다. 현재로선 생산 원가와 선가 상승이 불가피해 수주 경쟁에서 뒤처질 가능성도 있다. 부산일보 DB
올해와 내년 역시, 세계 경제 회복과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작년보다 50% 이상 증가한 연평균 약 1200척(3100만 CGT) 증가를 예상했다. 2020년 795척에서 2021~2022년 1227척(54%↑), 2023~2026년 1789척(125%↑), 2027~2031년 1959척(146%↑)의 꾸준한 상승세다.
무엇보다 한국 조선의 주력 선종인 LNG 운반선이 환경규제, 선대 교체 수요 덕분에 연간 60척 이상 견조한 발주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LNG 운반선은 지난해 총 53척이 발주됐는데, 하반기 카타르발 LNG 프로젝트 등을 통해 올해와 내년 64척(21%↑), 2023~2026년 62척(17%↑), 2027~2031년 62척(17%↑)으로 증가세를 점쳤다.
관건은 가격 경쟁력이다. 현재로선 생산 원가와 선가 상승이 불가피하다. 신바람 내며 수주한 것들이 자칫 손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향후 수주 전에서도 경쟁국인 중국에 비해 기술‧생산 품질에서 앞선다 해도 가격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조선사들은 이미 충분한 수주 잔량을 확보한 만큼 수익성 중심의 선별 수주에 집중해 하반기 실적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동남권에 산재한 중소 기자재업체들도 좌불안석이다. 원청이 손실을 메우려 납품 단가를 깎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감을 확보하려 무리해서 저가로 수주한 선박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향후 철광석 가격이 안정을 되찾고, 올해 수주한 선박의 매출 비중이 점차 커지면 실적 개선의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