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지로 만든 ‘디지털 패턴’, 고정관념을 깨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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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작가 개인전 ‘카오스모스’
고은사진미술관 29일까지 전시

이중근 '나 잡아봐라'.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나 잡아봐라'.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사진 전문 미술관에서 사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이 기획한 이중근 작가 개인전 ‘카오스모스’에서는 사진으로 디지털 패턴을 만들어 내고, 유명 건축물의 사진 수백 장을 이어 새 공간을 보여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 이미지는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도구입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미술가’에 두고 있지만, 그의 작업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인 패턴 작업부터 최근의 한국 신전 시리즈까지 이 작가가 사진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현대미술 작품들이 소개된다.

몽유도원도·뉴질랜드 숲 합성하고

작가가 모델 되어 현대인 풍자하고

신전 기둥 활용 소비자본주의 표현

전시는 몽유도원도의 이미지와 뉴질랜드의 숲 사진을 결합한 작품으로 시작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대형 설치작업을 고은사진미술관에 맞춰 재구성한 것이다. 작품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패턴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 섹션 ‘현대적 모티브’는 디지털 패턴 사진 작업을 소개한다. 이 작가는 학부 때 섬유미술을 전공해서 패턴, 문양, 프린팅에 익숙하다고 했다. 응용미술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아르바이트로 사진이나 컴퓨터그래픽 작업도 했다.

이중근 '위장'.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위장'.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위장’이라는 작품은 위장복을 입은 군인 사진을 반복해서 사용해 철조망 형상을 만들어냈다. “군대에서 느낀 속박을 벗어나지 못하는 집단생활이 사회 안에서도 이어지는 것을 유희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직접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으로 누군가를 밟고 또 누군가는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나타냈어요.”

작가의 옛날 가족 사진도 예술적으로 변신했다. 아기 때 형과 함께 찍은 사진은 ‘유모차’, 부모님과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은 ‘장미빛 블라우스’라는 작품이 됐다. “당시 어머니가 입으신 옷의 컬러와 향기가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각 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성을 추상적 패턴과 컬러로 표현했어요.”

이중근 '트로피'.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트로피'.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2004년 작 ‘트로피’는 미국 LA 레지던시 기간 중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 경험에서 나왔다. “연예인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가는 장면에 권력 욕망이 오버랩 돼 느껴졌어요. 오스카 상에 당시 활동한 국내외 정치 지도자의 이미지를 합성하고 삼각형 제일 위에 작가의 얼굴을 넣었어요.” 17년이 지났지만 작품 속 일부 정치인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권력으로 정치 현장에 존재한다.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을 상징하는 눈, 입, 코, 귀, 혀 이미지를 꽃처럼 재배치한 ‘오감화’도 묘한 느낌을 준다. 멀리서 보면 수국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귀꽃’이다. ‘나 잡아봐라(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작가 자신이 모델이 되어 100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돈에 의해 쫓고 쫓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했다.

이중근 '혀꽃'.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혀꽃'.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세 개의 문'.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세 개의 문'.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종교적 아이콘’ 섹션은 종교적 도상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 작업이다. 신전 기둥 위에 작가가 패션모델처럼 연출한 이미지를 합성해 소비 자본주의를 표현한 작품 등이 있다.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을 소재로 한 작업은 700여 장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다. “대성당 입구 3개의 문 주변에 350여 개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표정으로 제 얼굴 사진을 찍어 인물상에 합성했어요.”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 독일 베를린 돔 같은 역사적 건물을 담은 작품들을 보면 현실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느껴진다. “계속 위치 이동을 하며 분절해서 찍은 사진들을 합성한 것입니다. 사진으로 디지털 패치워크를 해서 누구도 보지 못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봤습니다.”

이중근 '적멸보궁'.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적멸보궁'.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신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중근 '신로'.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최신작 한국 신전 시리즈도 함께 선보여

눈 내린 아침 종묘 아름답게 담아내

통도사 적멸보궁 천장 200장 분절해 촬영

이 작가의 디지털 패치워크는 ‘신전’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종묘를 표현한 작품은 가로 길이가 4.24m에 이른다.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엄숙함을 주는 것이 눈이 소복하게 내린 느낌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2년 동안 눈 내린 다음 날 아침 일찍 종묘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어요.”

최신작인 한국 신전 시리즈 중 ‘적멸보궁’은 통도사 적멸보궁의 천장을 분절해서 찍은 200장의 사진을 합성했다. “어렵게 촬영 허가를 받고, 스님들 예불 시간 중간의 휴식 시간에 찍었어요. 1시간 안에 찍어야 해서 무릎을 꿇은 상태로 숨도 안 쉬고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일어나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전시 제목 ‘카오스모스’는 카오스(Chaos)와 코스모스(Cosmos)를 결합한 것으로, 혼돈 속 질서의 세계를 뜻한다. “작가로서 보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 우리 생각의 고정관념을 환기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사진적 시각의 무한한 확장성도 함께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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