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양식장 수온 섭씨 30도 근접 ‘뜨뜻’ “그냥 두면 다 죽으니 풀어줄 수밖에…”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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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고수온 피해 현장

경남 남해안 어류 양식업계의 여름나기가 힘겹다. 역대급 폭염에 바다도 덩달아 끓어오르면서 양식 물고기 떼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겨우 살아남은 물고기도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고수온 특성상 폐사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 어민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한산도 앞바다에 있는 한 양식장에서 폐사가 우려되는 말쥐치 치어 10만 마리를 미리 방류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경남 남해안 어류 양식업계의 여름나기가 힘겹다. 역대급 폭염에 바다도 덩달아 끓어오르면서 양식 물고기 떼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겨우 살아남은 물고기도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고수온 특성상 폐사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 어민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한산도 앞바다에 있는 한 양식장에서 폐사가 우려되는 말쥐치 치어 10만 마리를 미리 방류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고수온 데미지가 심해서 이대로 두면 죽을 수 밖에 없어요. 안타깝지만 살릴 수 있을 때 풀어줘야죠.”

11일 오후 경남권 최대 양식어류 산지인 통영시 한산도 앞바다. 널찍한 사각 틀 모양의 구조물이 군데 군데 줄지어 떠 있다. 해상 가두리 양식장이다. 짙게 낀 구름이 뙤약볕을 가렸는데도, 바다 위 열기는 여전하다.

경남 통영·거제·남해·하동

525만 마리 폐사, 85억 손실

피해 양식장마다 악취 진동

애타는 어민들 “잠도 안 와”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힘에 부친 듯 흐느적거리는 물고기를 지켜보던 어장주 나훈(49) 씨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바닷속 온도를 나타내는 수온계엔 26.7도가 찍힌다. 바다 양식 한계 수온인 28도에 근접했다. 이대로는 하루, 이틀 사이 떼죽음이다.

결국 나 씨는 폐사가 우려되는 어린 말쥐치를 미리 방류하기로 했다. 모두 10만 마리. 입식한 지 한 달 보름밖에 안 된 치어다. 무리를 가두고 있던 그물을 풀자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진다. 못내 아쉬운 듯 눈을 떼지 못하던 나 씨는 “우짜든지 잘 살기를 바란다”고 되뇄다.

뱃머리를 돌려 닿은 또 다른 양식장. 뗏목에 발을 딛는 순간 부패한 생선 특유의 악취가 코끝을 자극한다. 수조 귀퉁이마다 어른 팔뚝만한 물고기 수십 마리가 허연 배들 드러낸 채 떠다닌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폐사체다. 숭어 49만 5000마리가 있는 이 어장에선 며칠 사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어장주는 “하룻잠 자고 나면 수 백마리가 떠 오른다”면서 “마음이 안 좋다. 잠도 안 온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며칠 사이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에서 어민이 폐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최근 며칠 사이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에서 어민이 폐사체를 수거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경남 남해안 어류 양식업계의 여름나기가 힘겹다. 역대급 폭염에 바다도 덩달아 끓어오르면서 양식 물고기 떼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겨우 살아남은 물고기도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후유증이 오래가는 고수온 특성상 폐사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 어민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경남도에 지난 2일부터 통영을 중심으로 고수온에 의한 양식 어류 집단 폐사 신고가 급증했다. 11일 현재 접수된 어업 피해만 525만 6000여 마리, 85억 원 상당이다. 통영이 403만 7000마리로 가장 많다. 나머지는 거제 53만 4000마리, 남해 36만 1000마리, 하동 31만 4000마리, 고성 9700마리다. 이 중 410만여 마리가 고수온에 특히 취약한 우럭(조피볼락)이다. 벌써 최악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한 2018년(686만 마리, 91억 원)에 근접했다. 지금 추세라면 이를 뛰어넘을 수도 있다.

경남 연안에서 사육 중인 어류는 모두 2억 3000만여 마리로 절반에 가까운 1억 770만 마리(47%)가 고수온에 취약한 우럭이다. 최근 고수온 피해가 우럭에 집중되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는 참돔, 농어 등 고수온에 강한 난류성 어종에서도 폐사가 발생하고 있다. 어민들은 애지중지 키운 물고기를 지키려 면역증강제 공급하고 산소 발생기와 산소 탱크를 24시간 가동하는 등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연일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부진에 고수온 피해까지 감내해야 하는 어민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올여름 경남 앞바다는 짧은 장마 이후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달 29일 고수온 주의보에 이어, 지난 4일 최고 단계인 ‘경보’가 발령됐다. 경남에서 경보가 발령된 것은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최근 제9호 태풍 ‘루핏’의 간접 영향으로 폭염은 한풀 꺾였지만, 경남 앞바다는 수온은 여전히 섭씨 30도에 육박하고 있다. 작년 이맘때보다 4~5도 높은 수준이다.

올여름 고수온에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 김민진 기자 올여름 고수온에 숭어 1만 5000마리가 집단 폐사한 한산도 인근 양식장. 김민진 기자

그나마 오는 주말 동안 남해안에 많은 비가 예보된 터라 고수온의 기세도 다소 누그러들 전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민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진 상황에 급격한 수온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에 수온 1도의 변화는 육상 기온 4도와 맞먹는 충격이다. 게다가 수온이 떨어지고 많은 비로 육지에서 영양염이 공급되면 적조 발생을 부추길 수 있다. 실제로 전남 앞바다에서는 지난 10일 올해 첫 적조 예비주의보가 발령됐다.

경남도와 지자체는 취약해역 양식장을 중심으로 실시간 수온 정보를 제공하며 피해 최소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폐사가 우려되는 양식장을 대상으로 사전 방류사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우럭, 감성돔, 말쥐치 등 71만 마리가 바다에 풀렸다.

통영시 김석곤 어업진흥과장은 “일단 고수온은 이번 주말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온이 떨어져도 피로 누적으로 추가 폐사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적조 발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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