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지방혐오 리포트] ④ 외면받는 사투리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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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친근하고 호감 가는데 쓰고 싶지는 않아요”


(주)쿠도가 제작한 부산 사투리 캘리그라피 책갈피. (주)쿠도 제공 (주)쿠도가 제작한 부산 사투리 캘리그라피 책갈피. (주)쿠도 제공


지방혐오의 상당수는 사투리를 매개로 한다. 지역민들은 일상적으로 사투리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고, 이는 사투리 사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연결됐다.


사투리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

평소 차별 경험으로 사용 기피

일상 속 표준어 사용 많아져

사투리 비중 줄어 입지 축소

지위 낮을수록 사용에 부정적

때·장소 가려 쓰는 언어로 취급


에코에코협동조합이 제작한 '부산사투리 100선' 자석.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부산 사투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가길 바라며 제작됐다. 에코에코협동조합 제공 에코에코협동조합이 제작한 '부산사투리 100선' 자석.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이 부산 사투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가길 바라며 제작됐다. 에코에코협동조합 제공

■잊히는 ‘옛날 말’ 사투리

‘저 가가꼬 뽀대고 있네.’ ‘송신해서 살 수가 없다.’

부산시와 동아대 국어문화원이 발간한 책 〈단디 알자 부산사투리 500선〉에서 발췌한 예문이다. ‘뽀대고 있다’는 ‘할 짓 없이 모른 척 붙어 있다’는 뜻이고, ‘송신하다’는 ‘시끄러워 정신이 없다’는 뜻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이 같은 사투리가 낯설거나 아예 뜻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실제 2013년 〈부산일보〉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해운대구와 남구 지역 초등학생 4~6학년 476명에게 부산 사투리 단어의 뜻을 아는지 물어봤다. 그 결과 460명이 부산 사투리 일상어 66개 중 3분의 1도 알지 못했다.

부산대 국어교육과 이근열 교수는 “SNS, 유튜브 등 정보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젊은 층의 고유한 사투리 사용은 줄어든다”면서 “사투리 보존은 혈통주의가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표준어는 상위 계층의 언어”

국립국어원이 실시한 ‘2020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이 평소 자주 쓰는 언어 중 표준어 비중은 56.7%로 나타났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이 조사에서 2005년 47.6%, 2010년 47.5%, 2015년 54.5%로 조사 때마다 일상언어에서 표준어 사용 비중이 점차 늘어나며 사투리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자신의 사투리 사용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학력이 낮고 월평균 가구 소득이 낮을수록 자신의 사투리 사용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사투리는 때와 장소를 가려 써야 하는 언어라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사투리와 표준어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이가 전체의 40.6%였고, 기본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하고 사투리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이도 전체의 26.9%에 달했다. 학력과 월평균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때와 장소를 가려 사투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집단은 표준어를 상위 계층의 언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지위가 높을수록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사투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주류 집단과 화합에 저해가 된다고 판단해 의식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쿠도가 제작한 부산 사투리 열쇠고리. (주)쿠도 제공 (주)쿠도가 제작한 부산 사투리 열쇠고리. (주)쿠도 제공

■일상 차별이 사투리 외면 불러

사투리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투리 사용자들과 대화할 때 친근한 느낌이 든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9.9%이고, 사투리를 사용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2005년 26.3%에서 2020년 86.1%로 대폭 개선됐다. 동아대학교 국어문화원이 2016년 부산 시민 25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대다수가 표준어보다는 부산 사투리에 더 호감이 간다고 응답했다.

사투리 자체는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은 개개인이 사투리로 인해 겪은 ‘먼지 차별’(도처에 깔린 작은 차별)의 경험이 축적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동아대 국어문화원 박주형 연구원은 “대부분 학생이 평소에는 사투리로 이야기를 잘 하다가도 발표 등 공개된 자리에서는 억지로라도 서울말을 사용하고자 한다”며 “일상에서 사투리 사용으로 인해 겪었던 차별이나 불평등이 개인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고 밝혔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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