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리더의 자질을 생각해본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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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라이프부장

코로나 시대, 주말은 대부분 ‘강제 집콕’을 하게 된다. 많은 이들에게 무료한 집콕을 달래주는 가장 큰 오락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한 영화 보기가 되고 있다. 전 세계 가입자 수가 2억 명이 넘는 최대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의 한국 영상물 중 요즘 가장 핫한 작품은 ‘D.P.(디피)’이다.

‘대한민국 군대를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한 역대급 작품’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같은 감상평을 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해 첫 번째 시즌 6개의 작품을 주말 하루 만에 모두 시청했다.

화제작 ‘D.P.’가 보여주는 현실 군대

부조리와 폭력이 만든 불행 그려내

자신의 진급만 관심 있는 무능한 리더

검증받지 못한 권력 비극 낳기 마련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희생할 때

리더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어

이 작품은 탈영병을 잡는 군대 헌병 내 조직 D.P.를 배경으로 군대의 만연한 폭력과 괴롭힘, 조직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소재지만, 짜임새 있는 내용과 배우들의 열연, 묵직하게 전하는 주제 의식은 6개의 드라마를 연이어 보게 할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

매회 극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중 유독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 리더의 무능함이었다. 헌병대 대장이나 중간 간부로 나오는 대위는 자신의 평판과 진급에만 관심이 집중돼 있다. 문제를 바로잡고 해결책을 찾기보다 무리해서라도 빨리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

내무반 앞이 썰렁하다는 상급자의 말 한마디에 모든 장병이 한밤중 동원돼 산의 나무를 뽑아 옮겨 심는 장면은 코미디처럼 다가올 정도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군대의 일화는 익히 많이 들었다. 스타(장군)가 부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부대 내 모든 인원이 동원돼 징그러울 정도로 청소한 일화는 군필자들이 단골로 하던 이야기 소재였다.

군의 리더십과 관련해 주말 인상적인 사진 1장을 봤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작전에서 철수 시한 1분을 남기고 카불공항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1명의 미군 사진이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이었고, 더군다나 탈레반과 갈등관계인 IS의 테러 위협마저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런 급박한 순간, 총 한 자루를 든 채 마지막으로 수송기를 타기 위해 뛰어오던 그 병사는 바로 카불 철수 작전을 총괄한 미군 82공수사단 크리스 도나휴 사단장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12만 2000여 명의 철수 작전을 지휘한 총지휘관이다. 그야말로 군필자의 일화에 무시무시하게 등장하는 사단장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그의 옆이나 뒤에는 그 어떤 호위병력도, 부관도 없다. 여느 미군 공수부대원과 다를 바 없는 차림새에 지휘봉이 아니라 M4카빈총을 손에 들고 현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수송기로 걸어와서 탑승한 것이다.

미군의 리더십은 “작전을 마치고 귀환할 때, 아군 지역으로 넘어오는 마지막 탱크는 지휘관의 탱크여야 한다” “사단에서 리더들은 가장 먼저 뛰어내리고 가장 나중에 먹는다”는 말로 대표된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라는 책에서 리더를 향한 신뢰는 우리를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길 때 나온다고 설명한다.

단지 계급이 높은 상관이기 때문에 복종하는 시스템은 언젠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신뢰받지 못하고 검증되지 못한 권력이 만든 참사는 세계 역사 어디에나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군대 내 부조리와 폭력이 단절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문득 초등학교 반장에 당선되었던 아이의 일화가 떠오른다. 이사, 엄마의 미국 연수 등으로 학교를 몇 번이나 옮겨야 했던 아이는 5학년 때 처음으로 반장 선거에 출마했다. 아이가 선거에 나가는 것조차 몰랐는데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서 아이가 어떻게 연설했고 당선되었는지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딱 한 마디만 했단다. 자기가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더니 “이 실내화의 바닥이 닳을 때까지 여러분을 위해서 봉사하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절을 하더란다. 긴 분량의 연설을 미리 준비해 온 다른 아이와 차별이 되었던 모양이다.

물론 아이는 5학년 딱 한 번만 반장을 하고 그 이후는 반장 선거에 나가지 않고 있다.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이 가장 맡기 싫어하는 청소구역을 담당했고, 급식도 가장 나중에 먹었고 아이들의 민원을 처리하느라 머리가 아팠던 모양이다.

한 나라의 리더를 정하는 대통령 선거의 서막이 올랐다. 당마다 대표 주자를 정하기 위해 경선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아이도 아는 봉사와 희생, 신뢰와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리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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