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여론 보도와 댓글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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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얼마 전 거의 온 국민과 언론의 찬사를 받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협력자’ 377명을 구출하는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반면에 일본은 자위대 수송기를 두 차례나 파견했으나 단 한 명을 탈출시키는 데 그쳐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극히 사소한 사안을 놓고도 정파성 구분에 따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언론사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만은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보도 일색이었다.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느끼는 전통적인 라이벌 의식을 감안할 때 국내 언론이 흥분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인 구출이 성공한 후 언론은 구출 작전 과정과 막후 이야기, 현지 협력자들의 입국 과정과 그 후 동향, 이들을 수용한 충북 진천군 주민들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보도를 내보냈다. 언론은 구출 작전에서 대참사를 기록한 일본 국내의 반응도 보도했다. 이 구출 작전은 정부가 주도한 정책적 사안에 해당하니, 이와 관련해 국내외 ‘여론의 동향’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리수도 드러났다.

여러 일간지는 한·일 양국의 작전이 대성공과 참사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 데 대해 현지 일본인들이 부러움과 더불어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또 다른 언론사는 수송 작전 실패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중에서 한국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낸 의견과 더불어 혐한적 반응을 함께 전해 한국인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한편으로는 “한국의 수송 작전이 성공한 것은 좋은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자위대에게 너무 무례하다”, “탈레반은 한국인이 (몸값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봤다”는 식의 삐뚤어진 인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보도 모두 한국인의 민족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른바 ‘국뽕(국수주의)’ 기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이를 기사로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일본의 분위기를 전한 두 보도 중 어느 쪽이 일본 여론에 가까울까?

이 기사에서는 무엇보다 현지 여론의 근거로 삼은 발언의 출처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 보도는 인용문의 출처를 ‘소식을 접한 일본인들은’이라고 적었고, 또 다른 기사는 ‘일본의 한 누리꾼은’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익명 출처를 근거로 작성해 신뢰성이 낮은 기사인 셈이다. 익명의 출처는 혹시 기자가 실제로 취재를 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작문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견해가 과연 현지 여론의 잣대로 삼을 만큼 대표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식의 보도는 한국 독자들의 민족적 자부심이나 일본에 대한 분노에 영합해 클릭 수를 늘리는 데야 효과적일진 모르나 언론 보도의 기본 원칙을 크게 벗어난 행태다. 특히 지금처럼 국경의 구분 없이 전 세계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기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어설픈 보도가 불필요하게 국가 간 감정싸움만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도 있다.

언론이 국가적인 관심사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보도하고, 그 범위를 해외에까지 확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보도에 반영된 견해는 실제 여론에서 어느 정도 대표성을 갖추어야 하고, 믿을 만한 근거도 있어야 한다. 댓글은 일반인의 의견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무미건조한 기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댓글은 어떤 점에서는 의견의 ‘쓰레기장’과 같다. 어떤 사안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의견이 표출되고 때로는 사안과 무관한 의견이나 감정의 배설에 가까운 댓글도 수두룩하다. 다양한 의견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기자의 개인적 판단에 좌우되기 쉬우며, 때로는 편향된 정파적 시각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러다 보니 동일한 신문이 비슷한 사안에 대해 보도한 여론의 방향이 기사마다 제각각일 때도 있다. 아프간 협력자에 대해 따뜻한 여론 동향을 보도한 한 신문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기사에서는 “‘아프간 난민, 염전 보내라’… 포용이 사라졌다”라는 정반대 분위기의 여론 동향 기사를 내보냈다.

앞서 언급한 기사들은 방향은 다르지만, 기자의 시각에 맞는 의견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여론을 왜곡한 사례다. 여론 보도는 실제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 전에 먼저 여론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살피며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어떤 의견을 강조해서 보도하면, 사람들은 그 의견이 곧 여론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일부 극성스러운 댓글이 다수 의견으로 둔갑해 실제로 여론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댓글은 유용하지만 잘 못 쓰면 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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