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엔 여러 음용법으로… 1970년대 들어 인스턴트 믹스 형태 대중화
커피 마시는 법, 어떻게 변해 왔나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커피 음용이 시작된 이후 음용 방식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커피가 외국인 선교사, 부산해관(세관)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구한말, 커피는 ‘양탕(洋湯)국’으로 불렸다. 색이 검고 쓴맛이 나는 것이 마치 한약 탕국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른자·참기름 동동 ‘모닝커피’
60~70년대 유행, 선풍적 인기
고종이 1896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에는 “러시아 공사는 커피 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다음 끓인 물을 넣고 맛있게 만들어서 고종 황제에게 진상하였다”고 쓰여 있다. 영화 ‘가비’는 당시 융(천) 드립을 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재연했다. 또 원로 다인 이서구 씨가 에 쓴 내용에 따르면 대한광무연간(1897~1907)에 마셨던 커피는 “각사탕 속에 든 것으로 물을 끓여서 차종에 담고 게다가 각사탕 두세 개를 넣으면 사탕이 녹으면서 속에 들었던 커피가루가 울어나 저어 마시던” 것이었다.
지역 커피 연구자인 부산학당 이성훈 대표는 “커피가 처음 음용됐을 시기 융 드립 커피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음용 형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커피는 물론, 함께 넣어먹던 설탕도 수입된 것으로 당시 매우 귀한 음식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기까지도 끓인 물에 커피가루를 넣는 방식은 비슷했다. 이 때의 커피가루는 인스턴트가 아닌 커피를 빻은 가루를 말한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우리나라에 인스턴트커피가 본격적으로 풀리게 된다. 그러면서 일반 시민들이 미제 인스턴트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 톨 생산이 되지 않는 커피의 소비량이 어마어마해지자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커피 역수출을 결의하고 이후 커피 수입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 동서식품은 미국 제너럴 푸드사와 기술제휴와 합작 투자를 해 맥스웰하우스란 상표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4년 동서식품이 ‘프리마’라는 식물성 커피 크림을 개발한 후 1976년 1회용 커피믹스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인스턴트커피 시대가 시작됐다.
모닝커피 또한 한국 커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행이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풀어 그 위에 참기름을 한 두방울 떨어뜨려 휘휘 저어 마시는 커피였는데, 1960~19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