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마음의 거울… 한 땀 한 땀 정성껏 53년 전통 이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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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 ‘당코리’ 디자이너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인지 고등학생 때부터 정장을 즐겨 입었습니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도 매일 양복을 입어 친구들로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맞춤 양복 장인 당코리 이영재 대표의 대를 이어 본격 양복 전문가 수업에 전념하고 있는 말쑥한 외모의 이규진(30) 당코리 디자이너가 ‘굴욕’ 경험담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 디자이너는 최근 장애인 지원단체에 직접 만든 양복 33벌을 기증했다. 아낌없이 나누는 성품은 아버지 이 대표를 빼닮았다. “비록 아직은 부족하지만, 제가 한 땀 한 땀 만든 옷을 꼭 필요한 우리 친구들이 입었으면 했습니다. 마침 기회가 닿아 국제장애인협회에 기탁했습니다.”

맞춤 양복 장인 이영재 대표의 아들
최근 직접 만든 33벌 장애인단체 기증
젊은 감각 입혀 세계적 양복 만들 것

이 디자이너는 평생 맞춤 양복 장인인 아버지 밑에서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흔히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부자간의 고민이 되는 상황도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 출장을 따라 고등학생 때 이탈리아에 갔습니다. 이탈리아 명품 기업이 대부분 가족기업인 것을 보고 저도 양복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대학 때 무역학을 전공했지만, 24살 때 이탈리아와 영국 등 양복 본고장을 무작정 혼자 찾아갔다. “이탈리아 피렌체, 밀라노와 영국 런던 등지의 양복회사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습니다. 10벌 정도의 양복을 만들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당시 너무 고무된 측면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2017년 부산에서 캐주얼 브랜드 DLC를 창업했죠. 잘될 줄 알았는데 3년 만에 문 닫았습니다. 제가 성급했던 거죠.” 이 디자이너는 혹독한 현실 수업을 치르고 다시 아버지 밑으로 복귀했다.

“아버지가 혹독하시죠. 바느질 제대로 못 했다고 심하게 꾸짖기도 하십니다. 53년 맞춤 양복 전통을 이어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2019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그해 한·아세안 패션위크에서 당코리테일러 패션쇼를 준비하며 무대 양복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은 물론, 패션쇼 무대에 직접 올랐다.

“전문 모델은 아니지만 키가 184cm라 무대에 섰습니다. 패션쇼 무대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복식 관련 명예박사인 아버지를 통해 기술뿐만 아니라 복식의 인문학에 대한 밀착 수업도 받고 있다. “정장은 나를 나타내는 거울입니다. 어떤 자리에 어떤 옷을 입고 가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다릅니다.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고, 심리 상태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이 디자이너는 장차 대학원에 진학해 색채학을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유럽 유학 경험 등을 담은 관련 서적도 준비 중인데 이르면 연말쯤 출간할 계획이다.

“앞으로 양복에 젊은 감각을 입혀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당코리 양복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이 디자이너의 젊은 꿈이 기특하고 그윽했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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