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지 않은 간결함, 품격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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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의 공간 읽기] 수안동 ‘수안 커피 컴퍼니’

마치 수풀 속에 새가 커다란 둥지를 튼 것 같다. 혹자는 비행접시가 숲속에 내려앉은 것 같다고도 했다. 커피랩 ‘수안 커피 컴퍼니’(이하 수안 커피·부산 동래구 수안동)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찾아왔다. 수안 커피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2018년이었다. 수안 커피는 카페라면 으레 경치가 좋은 바닷가나 사람들이 붐비는 도심 한가운데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 버렸다. 그래서 전통적인 주거지역 안에 있다는 게 조금은 생뚱맞게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생활 밀접형 커피숍으로 이렇게도 썩 잘 어울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게 바로 수안 커피다. 바꾸고 나면 쉬워 보이지만, 습관이나 정해진 틀을 깬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상상력이 풍부한 건축을 만들어 냈다. 먼발치서 바라보면 보일 듯 말 듯한 원형의 공간은 강렬한 아우라로 일상의 공간, 우리의 삶 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주거지역 내 자리한 생활밀접형 커피 랩
위치·설계 등 기존 커피 공간과 차별화
원형 평면에 곡면 입면… 마치 물결 같아
은색 알루미늄 외관, 원자재 질감 살려
건물 안팎, 비대칭·투명함 등 두드러져
오래된 나무 살리는 등 자연친화 조경도


■카페 버전(Version) 4.0

수안 커피는 대지면적 952㎡, 연면적 548㎡에 지상 2층 구조다. 커피를 판매하고 로스팅하는 주 공간은 단층으로 돼 있어 2층 구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2층에는 항온항습 기능을 겸비한 생두 보관 창고 등이 있다. 건물 평면은 원형이며, 입면은 곡면으로 돼 있어 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이 휘어진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물결 모양이라고 했다. 표면 재질은 은색의 고강도 알루미늄이다. 그래서 언뜻 전시관이나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디자인이 독창적이다.

수안 커피를 설계한 전숙희(와이즈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건물 전체 외관은 커피콩 모양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부부 건축가로 유명하다.

본래 이곳은 동일고무벨트 사택 자리였다. 오래된 나무,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전 건축가는 “건축주가 태산목을 비롯해 나무를 충분히 살리길 원해 조경하시는 분께 특별히 나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나무 지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경을 최대한 살리다 보니, 나무 피해를 최소화해 건물을 배치하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건물이 마치 ‘둥지’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처음에는 ‘카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건축주가 주변을 살펴보니 인근 커피숍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주변과 상생한다는 차원에서 건물 규모를 조금 축소하고, 단순히 접객하는 공간보다는 커피 전문가를 대상으로 커피를 연구하는 커피 랩(lab)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커피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도 많이 오지만, 이제는 입소문이 나 일반 고객도 찾는 공간이 됐다.

건물 외관도 당초 잘 볶은 커피색으로 하려 했다가 정량적 커피를 지향하는 커피 랩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은색으로 바꿨다. 커피콩의 본래 색은 짙은 갈색이지만, 은색으로 변화돼 건물이 풍기는 아우라가 매우 강하다.

일반적인 카페 위치를 생각하면, 수안 커피은 다소 생뚱맞은 장소에 있다. 주택가 그것도 조금 한적한 주거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곳에 카페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내 커피 역사에서 커피 공간은 세월을 먹고 공간을 확장하며 달려왔다. 처음은 다방이었다. 1980년대 전국은 ‘다방 천지’였다. 시골에도 곳곳에 다방, 커피숍이 생겼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방이나 커피숍이라는 말보다 카페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2010년대는 경치가 좋은 곳부터 하나둘 카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바닷가 카페는 아직도 쉼 없이 들어설 정도로 현재 진행형이다.

한데 수안 커피는 이런 공간과는 다르다. 번잡한 도심이나 상업지역과도 벗어나 있다. 어쩌면 한적할 정도다.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이면 모를까, 골목 안으로 일부러 들어오지 않으면 쉬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애써 바깥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수안 커피 박대성 매니저는 “지금까진 크게 홍보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조금씩 입소문이 나, 일반 소비자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수안 커피는 생활 밀접 커피숍을 지향한다. 그래서 주택가 안에 있어도 당당하다. 그 당당함은 건축이 주는 아우라로 표출됐다. 동아대 건축학과 김기수 교수는 “수안 커피가 동네 안으로 들어오면서 기존 카페 개념을 완전히 깨 버렸다. 또 이런 재료, 이런 모양의 건축 설계가 기존의 커피 혹은 커피 공간에 대한 관점과 시각을 완전히 흔들어 버렸다. 이렇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공간의 변화를 놓고 보면 ‘4.0 카페’ 버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카페인 듯 카페 아닌 카페 같은

수안 커피는 내부 인테리어로 고객을 현혹하지 않는다. 건물 밖도 덤덤하지만 안도 덤덤하다. 그런데도 고급스러워 보이면서 품격이 있다. 특히 원자재의 질감을 잘 살린 점, 비대칭성과 투명함, 부드러움 등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간결하다. 독일 출신 미국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라 했다. 김기수 교수는 “이건 건축사가 내공이 있다는 얘기다. 부산에 이런 건축이 있다는 게 기분이 좋다. 좋은 건축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마무리 또한 깔끔하다. 이런 건축이 도시를 바꾸고, 동네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일본 ‘센다이 미디어 테크’(도서관)나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나오시마의 ‘테시마 미술관’이 기존 도서관이나 미술관 개념을 완전히 깨버렸듯이 말이다. ‘센다이 미디어 테크’를 설계한 이토 도요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과 ‘테시마 미술관’을 설계한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이다.

건물은 대지 위에 참 오묘하게 자리 잡았다. 높낮이가 다른 납작한 원통형 건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보이고 읽힌다. 공간 전체는 땅에서 살짝 들려 있는 느낌이다. 그 덕분에 멀리서 건물을 내려다보면 태극 문양의 음·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건물 밖 대지 경계선에서 보면 땅속에 살짝 묻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건물 내부 24m 원형 벤치에 앉아 바깥뜰을 눈높이와 나란히 하며 파노라마처럼 보이도록 한 결과물이다. 통유리창을 통해 드러난 바깥 풍경은 그대로 작품이다. 전 건축가는 “이는 커피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장치”라고 했다.

일반 소비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 보통 카페와는 다르게 자리(원형 벤치)가 좀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다. 한쪽만 바라보는 시야. 그래서 처음은 낯설 수도 있다.

건물 입구는 오묘하다. 야트막한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진정한 커피의 세계로 입장하는 느낌이다. 좁은 공간으로 쑥 빨려 들어가듯 고객을 유도했다가 확 트인 내부 공간을 만난다. 호기심에 대한 충족…. 공간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내부는 커피랩답게 연구실이나 실험실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창과 함께 이어지는 긴 벤치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수많은 골강판으로 유려한 모양을 낸 천장도 세련미를 더한다. 마치 열주처럼 줄지어 서 있는 7개의 기둥은 엄숙하면서도 정갈하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 보자. 수안 커피는 자체 로스팅 원두를 카페에 납품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든 공간은 카페라기보다는 커피 로스터리와 커핑, 추출까지 이뤄지는 공장이자 커피의 모든 과정을 다루는 갤러리 같다. 공간은 B2B 판매와 유통에 주력하는 기업답게 철저히 커피를 이해하기 위한 곳으로 구성했다. 건물 내부 공간은 로스팅 하는 제조실, 커피 추출하는 바, 커피 마시는 공간, 이렇게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커피를 시음해보고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로스팅한 커피 맛을 평가하는 커핑(cupping)과 추출을 위한 거대한 바와 뒤편의 로스터리 기계를 통해 수안커피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내부 배치를 자세히 보면, 건물 중심부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이걸 상품으로 구현해 동심원처럼 소비자에게 다가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수안 커피에는 실험 정신이 빛난다. 유리, 알루미늄, 콘크리트, 메탈 등 다양한 재료의 결합은 우리가 잘 볼 수 없는 독창적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공동 기획: 부산일보사·부산광역시건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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