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 출마합시다"
지난 7일 부산진구청 구청장실에서 진행된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의 ‘위풍당당 링크사업’ 정치시정 분야 멘토링.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오른쪽)이 멘티 성보빈(중간)·배정은(왼쪽) 씨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정치를 고민하는 2030여성들에게
1.5%와 2.0%. 2018년 지방선거에서 광역과 기초의회 선거 전체 당선인 가운데 청년(20~30대) 여성의 비율이다. 전체 당선인(광역 824명, 기초 2926명) 가운데 청년여성(12명, 58명)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낮은 청년(46명, 192명)의 비율보다도 한참 더 낮다. 다시 내년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는 턱없이 낮은 청년여성의 정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정치와 출마를 고민하는 2030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 정당의 주요 여성 당직자들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청년-여성-정치
“두 분 같은 젊은 여성들이 구의회에서부터 생활정치의 경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민사회 단체 활동을 하다가 비례대표로 처음 구의원을 시작한 게 서른 아홉 살이었는데요.”
지난 7일, 부산진구청 구청장실에서는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의 ‘위풍당당 링크사업’ 정치시정 분야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멘토인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은 성보빈(30), 배정은(29) 두 멘티가 준비한 ‘청년여성의 정치 참여와 지방의회 진입’ 보고서 내용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풀어나갔다. 그는 2006년 기초의원 비례대표 도입과 함께 선출직에 진입했고 지역구 구의원을 거쳐 구청장에 당선됐다.
2018지방선거 당선인 청년여성 2% 안 돼
여성할당제 권고 그치고 기존 조직 벽 견고
“출마 고려한다면 정당 강령 등 살펴보고
맞는 정당에 가입한 뒤 적극 활동해 보라”
“기초의원은 주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삶과 직결되는 정치를 할 수 있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구청장에 도전할 수 있었고요. 여성의 눈으로 제가 일과 양육을 병행하면서 느낀 것들이 정책과 예산에 반영되고 실제로 개선되는 걸 보는 게 진짜 재미있었어요.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를 확인하면 보람도 크고요.”
그러나 청년여성은 출마까지 이르기도 쉽지 않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지역구와 비례를 통틀어 전체 후보자 중 2030 여성의 비율은 광역의회 2.8%, 기초의회 2.2%에 그쳤다. 청년여성은 출마했는데 당선되지 못한 게 아니라 후보자가 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지역구 후보의 30%를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한 할당제는 권고에 그치고, 청년은 거대정당의 ‘청년팔이’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청년여성은 이중으로 주변인이다.
반면 청년여성의 관심은 결코 낮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2020년)에 따르면 특히 20대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참여를 더 많이 하고, 정치가 시민의 요구에 반응할 것이라는 외적 정치효능감도 더 높다. 선출직 출마 의지는 남성이 더 높지만, 자신이 출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20~40대의 경우 성차가 거의 없다. 중년·남성 중심의 정당 구조를 개선하고 청년여성을 조직화한다면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앞서 멘티들도 보고서에서 청년여성의 정치 참여와 출마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부산시의 산발적인 청년 프로그램과 정당의 청년여성 특화 프로그램 부족을 꼽았다. 성 구청장도 동의했다. “정당별로 여성 아카데미 등을 운영하지만 여성을 포함해 청년 예비 정치인을 발굴하고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은 아직 약한 게 사실이에요. 정당에 기여한 사람과 신규 진입 세력 양쪽에 조화롭게 기회가 주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맞고요.”
내년 지방선거는 달라질 수 있을까. 일단 ‘이준석 돌풍’을 계기로 청년층의 잠재력을 확인한 정치권이 공천 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정치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술·담배로 대표되는 조직력도 생각처럼 중요하지 않아요.” 성 구청장은 “어쨌든 정당은 청년과 여성의 경쟁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출마를 준비하는 청년여성이 있다면 지금은 경력에서 빠진 부분을 채워나갈 때”라고 조언했다.
청년여성이 말한다
성보빈 씨는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보궐선거에서 사하구 구의원에 도전했지만 공천을 받지 못한 당사자다. 경제학도로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대학 학내 문제에 목소리를 낸 것을 계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당시 새누리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부산시당 부대변인과 중앙당 청년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적지않은 스포트라이트도 받았지만 결국 조직 중심의 공고한 벽을 넘지 못했다.
“정당에 기여한 분들이 우선권을 받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돈도 시간도 없는 청년에게는 기회조차 없으니까요. 정작 당선된 청년들도 정당 밖에서 온 경우가 대부분인 걸 보면 힘이 빠졌죠.” 그는 지난해 탈당하고 지금은 여성정책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현장에서 여성과 정치를 배우고 있다. 사하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등 청년단체 활동도 여전히 열심이다. “출마의 꿈을 접은 건 아니에요. 기회가 온다면 망설임 없이 도전할 겁니다.”
진보당 후보로 금정구 구의원 출마를 준비하는 김명신(28) 씨도 일찌감치 정당 활동을 시작한 경우다. 4년 전 지금은 진보당으로 통합된 민중당으로 당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도 여느 청년과 마찬가지로 ‘정치 혐오자’에 가까웠지만 정당 활동을 하면서 정치와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관점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자 기존 정치가 청년을 대상으로 소비하면서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게 보였고, 출마를 결심했다.
“청년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기존 정치 대신 청년이 직접 우리의 삶을 바꾸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은 진보당의 청년 실태조사에서 출발한 청년지원조례 제정 운동에도 반영됐다. 그는 교육문화특구를 표방하는 금정구가 매년 600억 가까이 남는 예산의 일부를 청년에게 월 3만 원씩 지역화폐로 지급하도록 하는 금정구 청년지원조례 제정 추진위원회에서 지역의 청년 단체·개인과 더불어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초의원 출마를 꿈꾸며 이제 막 한 정당에 가입한 30대 공공기관 직원 A 씨도 있다. “청년 여성 1인 가구인 제가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을 찾아보니 별로 없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구체적으로 출마를 생각하게 됐어요.” 목표는 빠르면 2026년 지방선거 출마다. 곧 시작할 부산시의 한 위원회 활동도 출마 준비의 일환이다. “구의원이 된다면 먼저 소모적인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싶어요.”
정치에 대한 혐오나 냉소를 벗어나는 것부터 출발할 수도 있다. 영재의료재단 큰솔1·2병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는 배정은 씨는 시선을 넓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위풍당당 링크사업에 참여했다. “여성정치인을 직접 만나보니 정치가 거창하고 다가가기 힘든 것이 아니라 세심한 관심과 따듯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어린이나 노인 정책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정당이 말한다
각 정당의 지방선거 대비 여성 공천 전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역의 예산과 정책을 들여다보는 생활정치는 여성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능력있는 청년과 여성을 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문영미 국민의힘 부산시당 여성위원장)는 공감대는 대체로 비슷하다. 출마를 고려하는 청년여성이 있다면 일단 먼저 강령 등을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정당을 찾아 가입한 뒤 당의 각종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보라는 것도 모든 당의 부산시당 주요 여성 당직자들의 공통적인 조언이다. 최은영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여성위원장(해운대구의원)은 “특히 앞으로 대선 과정에서 공약 개발 등 활동을 하다 보면 당도 알게 되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부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네 명 중 두 명이 여성인 정의당과 남녀할당제를 넘어 남녀동수제를 강령에 둔 진보당은 여성에게 기회가 더 넓을 수 있다. 실제로 진보당은 지금까지 당 내에서 결정된 7명 기초의원 후보 중 5명이 여성이다. 그 자신도 동래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박오숙 진보당 부산시당 동래구돌봄운동본부장은 ”페미니스트 운동과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청년여성의 정치참여는 더 활발해졌지만 아직 조직화되지 못하고 개별화돼 있다”면서 “정치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우리 삶을 바꾸는 직접정치에 뛰어들 더 많은 청년과 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당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출마가 곧 당선이 아니라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시의원 비례대표 출마 경험이 있는 정의당 부산시당 하경옥 지방선거기획팀장은 “당선 가능성은 물론이고 직장 등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선거운동 비용을 생각하면 어려운 결심이지만, 선거 기간 동안 시민들을 직접 만나고 공감을 얻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의미있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