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목숨의 값, 이명의 값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특임교수

“하루에 한 명씩 죽어서 일 년에 재난노동 현장에서 450여 명이 죽고 고층에서 추락해 죽는 노동자가 250명입니다. 소소한 사고가 더 큰 사고가 된 거예요. 이것이 일상화되고 만성화되니까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마비돼 가는 것이지요.”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 선생의 말이다. 그는 보수주의자다. 그런 그가 거리에서 데모하며 인터뷰한 것이다. “만일 우리 사회 부유층이거나, 권세 높은 집의 도련님이나 아가씨가 계속 떨어져 죽고 깔려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진작 해결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여기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목의 가시처럼 걸렸다.

자살률 급증, 출산율 추락, 노인의 고독사
남의 아픔 모르는, 감수성 마비된 사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아야

‘화천대유’ 사건을 보며 이 글을 쓴다. 곽상도 의원의 젊은 아들이 퇴직하며 받은 50억 원의 내역에 대해 화천대유 측은 “곽 씨가 업무 스트레스로 이명과 어지럼증이 악화돼 진단서를 내고 올해 3월 사직했고, 당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위로금을 지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알려진 정보이긴 하지만 ‘산업 재해로 사망했을 경우 1억 원이다. 피해자가 노동 능력을 상실했을 경우 능력 상실률을 계산해 1억 원에서 그만큼을 제한다. 모두 피해자가 무과실인 경우다.’(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명씩 죽어서 일 년에 재난노동 현장에서 죽은 450명’의 주검 값이 각각 1억 원 이하라는 말이다.

반면 아비를 권력자로 둔 31세의 젊은이는 산재 보상을 겸하여 50억 원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의 목숨 값이 그러하고 ‘권세 높은 도련님’의 이명과 어지럼증이 악화되어 받은 보상금을 포함한 퇴직금이 저러하니 이모저모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때 ‘1박2일’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괜찮아’라며 사람을 웃겼지만, 그런 말이 나올 때는 턱없이 나올 리가 없다.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것은 야만의 신호다. 나만 아니면 괜찮을 수 없는 것이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식까지는 끼고 호호 불며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손자들까지는 일상을 다 챙기지 못한다. 불행은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협박이 아니다.

나는 너로 이뤄져 있다. 나는 부모라는 사람들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타인들의 덕택으로 옷가지며 먹을 것과 집을 얻어 살다가, 죽어서도 남의 손에 태워져 사라질 존재다. 그러니 어찌 내가 나이랴. 나는 남의 덕에 살다 가는 것이기에 ‘인간’인 것이다.

실은 나는 고전학자다. 10여 년간 ‘맹자’를 붙들고 있다가 이태 전 겨우 주석서를 출간했다.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인데 그 세월이 550년이다. 반 천 년이 넘도록 전쟁을 치렀다는 말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戰)이다. ‘戰’자 뒤에 붙은 ‘戈’가 창칼을 뜻한다. 고전학자의 등대는 사전이다. 내내 사전을 끼고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한 글자를 만나고 또 난데없이 글자끼리 이어지는 기묘한 순간을 가끔 접한다.

사전을 뒤적이다 전(錢) 자를 만났다. 돈을 뜻하는 글자인데 글자 오른쪽에 전쟁의 창칼(戈) 두 개가 겹친 모양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이 돈인데, 창칼 두 개를 겹쳐 돈을 형상한 옛사람의 눈길이 섬뜩했다. ‘돈이 전쟁보다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또 와중에 잔(殘) 자를 만났다. ‘잔인하다’는 뜻이다. 주검(死)을 두 개의 창칼로 저며내는 모양이 잔인인가 싶었다. 전쟁과 돈, 잔인과 시체가 한 선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와중에 청년층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소식이 겹쳐 든다. 결혼율이 세계 최저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출산율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을 터. 청년들은 ‘혼술’ ‘혼밥’이 일상이고 노인들은 ‘고독사’한다. 부산은 이미 ‘노인과 바다’다. 이건 조롱이 아니다. 인간의 사이가 낱낱이 흩어져 모래알이 되었다는 뜻이다. 말은 못 해도 지난 추석은 다들 휑하였으리라. 코로나19가 종식된 뒤로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감수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을 내 것으로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성 탓이냐고? 아니, 돈 때문이다. 타오르는 부동산에 들뜨고, 오르내리는 주식에 지옥과 천당을 가는 통에 ‘나만 아니면 돼!’가 된 것이다. 세월의 변화에 살아남은 책이 고전인데, 동서양 고전이 모두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공자가 ‘사람은 함께 사니 인간이다’라고 한 것이 다 같다. 사람의 사이가 끊기면 인간은 망한다.

참, ‘화천대유’는 주역의 한 괘다. 주역은 변하니까 역(易)이다. 많이 소유하고 싶어 대유(大有) 괘를 이름으로 삼았겠는데, 소유가 극하면 산란이 기다리는 것이 주역의 원리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햇살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은 법. 집착이 변화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