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맡기기엔…” 지역 활성화 법조차 외면한 공공기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의 한 공공기관이 무인경비 계약을 진행하면서 중소기업 판로 확보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판로지원법’을 외면한 채 대기업과의 경쟁을 유도해 논란이 인다. 단독 응찰한 부산 업체에다, 대기업을 포함시켜 경쟁에 부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 지역 활성화 등을 나몰라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부산우정청은 올 8월 말 부산권역 우체국 무인경비(기계경비) 통합운영 업체 계약 1차 입찰공고를 냈다. 여기에 부산 소재 경비업체인 A사가 단독으로 응찰했지만 유찰 처리됐다. 지난달 초 진행된 2차 입찰에서도 A사가 단독 응찰하면서 결국 최종 유찰이 됐다.

부산우정청 무인경비 업체 입찰
부산 기업 2차례 걸쳐 단독 응찰
평가도 않고 수의계약 기회 안 줘
대기업 제한 업종인데 경쟁 유도
지역 중기 지원 ‘판로지원법’ 무시

국가계약법 시행령 등에 따라 통상 단독 응찰로 유찰될 경우, 제안서 평가 후 적격 업체일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부산우정청 측은 A사에 ‘수의계약은 어렵다. 대기업과 경쟁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입장을 냈다. 대기업까지 참여할 수 있는 ‘일반경쟁입찰’로 다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부산우정청의 이번 무인경비 업체 계약 입찰은 약 6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향후 5년간 유효한 계약으로, 지역 기업 입장에선 소중한 기회다. 부산 지역 우체국 등의 무인경비를 맡는다.

부산우정청은 2015년 7월 입찰을 통해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경비업체 B사와 계약을 맺었다.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판로지원법)상 공공기관장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중소기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한경쟁 또는 중소기업자 중에서 지명경쟁 입찰에 따라 조달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한다. 무인경비업은 2019년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됐다.

국가계약법과 판로지원법을 감안할 때, 단독 응찰한 지역 업체에 대해 평가를 진행해 적격일 경우 수의계약 기회를 주는 게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부산우정청은 그런 평가 자체를 생략한 것이다. 정영옥 전 부산조달청장도 “공공기관의 지역 업체 활성화 차원으로 보면 역행하는 처사”라며 “대기업 밀어주기 의혹이 나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A사 측은 최근 부산지방조달청에 이와 관련한 민원을 제기했다. 부산우정청 측의 행정행위는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의지와 판로지원법 입법 정신을 정면 위반하는 것이니 시정해 달라는 요지다.

A사 관계자는 “지역의 우수한 중소기업이 두 번이나 참여했음에도 제안평가 실시와 적격업체 심사도 없이 유찰하겠다는 것은 지역 기업을 배제하고 기존 대기업과 계약을 유지하려는 행위”라며 “이는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는 정부의 지역 활성화와 균형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라고 강조했다.

A사 측 민원이 접수되자 부산우정청 측은 수의계약과 일반경쟁입찰을 두고 법리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판로지원법의 취지를 감안해 사회적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우정청 관계자는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며, 수의계약과 일반경쟁입찰 등 계약 방법에 대해 법리를 검토하는 중”이라며 “이번 계약은 무인경비업이 경쟁제품으로 선정된 뒤 부산우정청에서 처음 진행하는 만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