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도 쏟아지는 졸음 ‘기면병’, 약물 치료로 호전 가능
최근 기면병을 진단받은 20대 초반 대학생 A 씨. A 씨는 기면병 진단에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후련해 했다. 왜일까?
A 씨는 중학생 때 증상이 발생했다. 처음 부모님은 성장기니 그럴 수 있다고 반응했으나, 이후로는 불규칙한 수면 습관을 탓하기 시작했다. 학업 고충은 공부에 대한 의지 부족이라 치부됐고, 학교에서는 속칭 ‘잠신’으로 통했다. 다행히 A 씨는 끈질기게 노력해 대학생이 됐지만, 이후에도 졸음은 끊이지 않았다. 기면병 진단을 받은 뒤에야 그는 자신을 괴롭혀온 졸음의 원인을 알게 됐고, 속시원한 답을 얻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수의 젊은이들이 기면병을 앓고 있음에도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의지박약하고 게으르다는 낙인 속에 끙끙 앓고 있을지 모른다.
대체로 10~30세 때 첫 증상 발생
낮에 졸음 3개월 이상 땐 의심
약물 복용·수면 위생 병행 습관을
■낮 동안 과도한 졸음
기면병은 주로 낮 동안 시도때도 없이 잠드는 수면질환이다. 과도한 졸음과 갑작스러운 수면, 탈력발작, 수면마비, 수면환각, 야간 수면장애를 증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10~30세 때 첫 증상이 발생한다. 전체 환자 중 30%가량은 중년 이후에 발생하지만, 대부분 중·고교 때 발병해 중년까지 이어진다. 국내에는 최소 2000~3000명 정도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면병은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수면·각성 주기와 혈압, 물질대사를 조절하는 하이포크레틴(오렉신)이란 호르몬이 부족해서 발생한다.
청소년기에 기면병이 발병하면 심한 졸음, 집중력·인지능력 저하 등으로 이어져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학교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보통 이를 태도 문제나 단순한 육체 피로로 여겨 지나치곤 한다. 성인의 경우 해고 당하거나 아예 직장을 못 구할 수도 있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신경과 지기환 교수는 “기면병 증상 중 탈력발작은 웃고, 화내고, 흥분하는 등 감정의 변화가 생기면 갑작스럽게 몸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다. 심하면 자세를 유지 못 하고 쓰러질 수도 있다. 눈꺼풀이 처지거나 턱 힘이 빠지는 정도로 약하게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탈력발작은 기면병 환자의 약 70%에서 나타나는데, 이를 ‘제1형 기면병’이라 한다. 탈력발작이 없는 경우는 ‘제2형 기면병’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흔히 ‘가위눌림’이라 불리는 수면마비와 환각도 주요 증상 중 하나다. 수면마비는 잠들 때나 깰 때 정신은 또렷하지만, 몸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으로 당사자는 심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듣기도 하며,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 같은 다양한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수면다원검사로 진단
밤에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낮에 참기 힘든 졸음이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기면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지기환 교수는 “낮 동안 피곤함과 구별이 쉽지 않고, 춘곤증 등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많아 진단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빠른 시간 내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진단은 수면다원검사와 다중수면잠복기검사를 통해서 한다. 대개 검사는 수면검사실에서 하룻밤 잠을 자며 진행된다. 수면다원검사는 뇌파와 눈의 움직임, 심전도, 코골이 유무, 사지의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수면의 질을 평가한다. 수면 질을 저해하는 수면무호흡 등 다른 원인이 없다면, 이어서 다중수면장복기검사를 실시한다. 낮에 4~5회 잠자게 한 뒤 수면에 드는 평균 시간을 측정한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잠드는 시간이 평균 8분 미만이고, 잠에 들고 렘수면이 빨리 나타나는 현상이 2회 이상이면 기면병이다. 정상인의 경우 잠들고 보통 90분 이상 걸려야 꿈을 꾸는 렘수면이 나타나나, 기면병 환자는 잠들고 15분 이내에 렘수면에 빠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뇌척수액 내 하이포크레틴 농도를 구해 기면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약물 부작용 개선
현재 기면병은 완치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일부 탈력발작 증상이 완화되기도 하나, 대부분 졸음증은 지속된다. 따라서 기면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약물치료와 병행해 밤잠을 잘 자기 위한 ‘수면위생’이 중요하다.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하루 7시간 이상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잠자리에서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잠들기 전 음주나 흡연도 삼가야 한다. 20분 이내 규칙적인 낮잠도 효과적이다. 낮잠을 자면 얼마간 상쾌함을 느끼며 졸음이 경감된다.
기면병 치료 약물의 효능도 상당히 발전했다. 지기환 교수는 “과거 약물은 중추신경계 각성효과 외에도 심혈관계 부작용, 의존성, 야간 수면 방해 등 부작용 우려가 있었고, 작용 시간이 비교적 짧아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약물은 뇌의 시상하부에만 작용해 부작용 위험이 적으면서도 하루 한 알 복용으로도 12시간 정도 졸림증을 개선하고, 야간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 교수는 “수면장애를 앓는 대다수가 수면 건강식품이나 민간요법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만성화될 경우 증세가 악화돼 치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으니, 조기에 수면 전문의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