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대로는 누가 이겨도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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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대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최선은 커녕 차악도 찾기 힘들다"는 한숨이 곳곳에서 들린다. 방황하는 민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갤럽이 대선 6개월 전인 지난달 17일 발표한 조사에서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역대 최고치인 32%였다. 같은 기관의 여야 유력 주자 4인의 호감도 조사에서 여야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호감 34·비호감 58%)와 이낙연 전 대표(호감 24%·비호감 66%),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호감 30%·비호감 60%)과 홍준표 의원(호감 28%·비호감 64%)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호감도가 월등히 높았다. 국민 절반 이상이 싫어하는 사람 중에 그나마 덜 싫어하는 사람을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최선은커녕 차악도 찾기 힘들다”
역대 최고 부동층과 비호감 여론
혐오 대선으론 나라 미래 없어
진영 대결 대신 도덕률·상식 회복해야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 불릴 만큼 유권자들의 만족도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현재 레이스에서 지지율 상단에 위치한 주자들은 '스트롱맨' 이미지가 강하다. 기자가 직접 만나본 이들의 화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질문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을 향한 비판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이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가볍게 받아 넘긴다. 오류나 실수로 궁지에 몰려도 더 강한 반격으로 불리한 프레임 자체를 흔들어 버린다. 좋게 보자면 순발력과 돌파력이 탁월한 것이고, 반대로 보자면 반성 능력이나 염치가 부족하다 하겠다. 과거 이런 유형의 정치인들은 따르는 사람이 적어서 큰 선거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 이 지사의 경우, 형수 욕설 등 덕성의 문제 뿐만 아니라 성남시장 시절 모라토리엄 선언 등 튀는 행정으로 위험한 선동가라는 이미지가 짙었는데, 그런 모습이 이젠 지지층에게 어떤 반대에도 적폐청산을 밀고 나갈 돌파형 리더십으로 호평 받는다. 국민의힘에서 급부상 중인 홍 의원 역시 피아를 가리지 않는 독설로 측근들과도 수시로 불화하는 '독불장군형' 정치인이었지만, 지금은 20·30으로부터 "촌철살인",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라고 '엄지척'을 받는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고 시대 상황에 따라 지도자 상도 변하겠지만, 스트롱맨들의 부상은 이 정부 들어 그 정도가 훨씬 극단화된 진영 정치의 산물로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상대를 응징과 절멸의 대상으로 보니, 설득과 화합 능력보다는 정적을 몰아붙이는 공격력, 웬만한 흔들기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터프한 캐릭터들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기본 정책'에 1000조 원이 들어간다거나, 전술핵 재배치를 고수할 때 한반도에 어떤 외교적 격랑이 일어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오직 저 미운 상대 후보를 꺾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인식이 여야 모두에 팽배하다.

물론 양극화 문제도, 스트롱맨이 각광 받는 것도 대한민국 만의 현상은 아니다. 분열과 적의를 국정 동력으로 삼은 트럼프의 시대가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그의 4년 동안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얼마나 불안하고, 피곤했는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아, 물론 지금 유력 주자들이 그 정도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트럼프라는 정치적 실험으로 곤욕을 치른 미국은 4년 만에 어렵사리 통합과 치유를 내건 바이든으로 돌아갔다.

우리 역시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변곡점을 지나면서 국민 통합이 절실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절절했던 통합의 메시지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자취조차 찾기 힘들다. 오직 '정권 사수'냐 '정권 탈환'이냐는 사생결단의 결기만 가득하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국민이 반으로 갈려 서로를 공존불가능한 적으로 보는 사회에서 어떤 변화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럼에도 도무지 이런 흐름을 바꿀 방법이 없다는 중도층의 절망감이 역대 최고의 부동층과 비호감 수치로 표출된 것 아니겠나.

대선이 이 처럼 혐오의 장으로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단 옳고 그름의 문제를 진영 대결로 치환해버리는 습속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여당 1등 주자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대장동'이든, 검찰총장 출신의 야당 1등 주자의 '고발 사주'든 여야의 통제를 벗어난 특검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게 국민 다수의 생각이자, 상식적 판단이다. 특검을 통해 의혹을 명백히 가리고, 누구든 연루됐다면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최소한의 도덕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정도도 못 한다면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의 대결에 등장하는 말처럼 '누가 이겨도 인류의(나라의) 미래는 없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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