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국회의원 사퇴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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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걸고 베팅’ 속 보이는 사퇴쇼 이제 그만!

정치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국민의 따가운 여론에 밀려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도 많은 특혜와 막강한 영향력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위상이 어떠한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매번 총선거 때마다 이와 같은 ‘대한민국 300인 클럽’에 입성하기 위해 5 대 1 안팎의 높은 경쟁률이 펼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어렵게 의원 배지를 단 뒤 임기 중 스스로 이를 내던지는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지금 21대 국회만 해도 윤희숙, 이낙연, 곽상도 의원이 이런저런 이유로 의원직을 던졌다. 이들은 왜 의원직을 던졌을까.

나름대로 이유를 꼽겠지만, 당사자들은 모두 사퇴의 결단이 자신의 진정성에서 나온 행위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의원직 사퇴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정치적 쇼’인지, 정말 진정에서 나온 결단인지는 이제 국민들도 정확하게 간파한다. 의원직 사퇴의 맥점을 살펴본다.

막강한 영향력 가진 금배지
의원직 던지는 경우 적잖아
당사자는 “진정성” 주장
실제론 위기 모면용 많아
말로만 ‘의원직 사퇴’ 선언
논란 잦아들면 슬쩍 없던 일
복잡한 사퇴절차 대폭 개선
사직서 내면 그날로 사직
국회법 개정안 처리 주목
정쟁 수단 악용 막도록
사퇴쇼엔 페널티 적용도



■꼼수인가, 진심인가

의원직을 내던지는 국회의원은 대체로 자신의 정치적 결단임을 강조한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원직까지 내던질 정도로 자신의 행위 또는 결심이 확고함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정치적 충격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더 큰 정치적 도약을 위한 승부수 혹은 배수진이거나, 아니면 어떤 일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전환하기 위한 타개책으로도 사퇴 카드가 거론된다. 집단으로 이뤄지는 총사퇴 카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의원직 사퇴 카드의 약발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대체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쇼’라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20대 국회 박지원 의원(무소속)의 얘기가 자주 회자한다. 2019년 9월 당시 박 의원은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하자, 한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1. 의원직 사퇴 2. 삭발 3. 단식. 왜?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 죽은 사람 없어요.”

의원직 사퇴가 진정성 없는 보여 주기식 쇼라는 말인 듯하다. 실제로 사퇴 카드가 불리한 정치적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18~20대 국회에서도 지역구 국회의원 5명이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혀 놓고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의원들의 집단 또는 총사퇴 카드도 마찬가지다. 제헌국회 이후 이런 사퇴 선언은 수차례 있었으나, 실제 사퇴로 이어진 경우는 딱 한 번 있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회담 당시 이에 반발한 민중당 소속 의원 8명의 집단 사퇴가 유일하다.

■역대 국회의원 사퇴자는 얼마나…

대한민국헌정회의 ‘역대 의원직 변동’ 자료를 살펴보면 사퇴 의원은 제19대 국회에서 16명, 제18대 13명, 제17대 5명, 제16대 14명이었다. 가장 많은 의원이 사퇴한 때는 제14대 국회로 모두 23명으로 집계됐다.

사퇴한 의원 대부분은 선거 출마 목적이거나 장관 임명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19대의 경우 사퇴자 16명 중 3명은 장관 또는 청와대 공직 임명, 11명은 지자체장 선거 출마용이었다. 18대 역시 13명 모두 선거 출마 또는 장관 임명으로 물러났다. 이외 정치적 이유로 실제 자진 사퇴한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앞서 박지원 의원의 언급이 전혀 엉뚱한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의원직 사퇴 선언과 실제 사퇴가 이처럼 잘 일치하지 않는 것은 그 이유도 그렇지만, 사퇴 절차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사퇴는 선언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후속 절차가 있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우선 국회가 개회 중이라면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폐회 중이라면 국회의장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여야 간 정치적 이해가 얽혀 있다면 사퇴 절차의 진행은 훨씬 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퇴 안건이 본회의 의제로 올랐더라도 본회의 동의 없이 언제라도 철회의 의사표시만 하면 사퇴 선언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최근 윤희숙 의원이나 이낙연 의원처럼 사퇴 선언 즉시 국회의원 회관 철수나 세비 수령 거부 등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 과정 중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퇴 카드를 접으며 원래대로 복귀한다.



■의원직 사퇴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원론적으로 보면 국회의원의 사퇴는 대의정치 관점에선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의정치는 일정한 임기 동안 국민의 정치적 신임을 바탕으로 책임정치를 펼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원직 사퇴 허가를 국회의 의결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도 입법기관의 자율권을 존중하려는 대의정신의 제도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의원직 사퇴에 대해서는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규정 마련과 엄격한 조치가 필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나 위기 모면을 위해 의원직 사퇴를 남용한다면 그에 걸맞은 페널티 적용 등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국회의원의 사퇴 절차를 대폭 개선한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원이 사직하려는 경우 사직일과 사유를 적은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한 날로 사직한다’라고 명시해 기존 법안의 본회의 상정과 의결, 의장 허가 등 절차를 생략한 것이 특징이다.

국민의힘 개정안도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면 바로 그날로 사직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이 담겨 여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 사퇴 과정에도 이제는 지나친 특권적 요소를 걷어 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이를 방패로 삼아 사퇴 카드를 남발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양당이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양당이 발의한 법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국회의원의 사퇴도 이제 높아진 국민 눈높이 맞게 조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 비리 의혹이나 국민적 분노 등으로 인한 국면 전환용 사퇴나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의원 특권의 제한 등 엄격한 잣대를 고려해 볼 시기가 됐다. 설령 선언적 수준에 그친다 해도 국회의원이 스스로 국회의 권위를 높이고, 국민에 대한 책임정치를 조금이라도 강화할 수만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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