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모두를 망치는 ‘형님주의’
수석 논설위원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 단체 사진도 마스크를 쓴 채로 찍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마스크를 추억의 물건으로 이야기하는 날이 빨리 오길 기도한다. 신랑 측 어머니가 “아들 키워 봐야 돈만 많이 들고 소용없다”고 푸념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수억 원대에 달하는 신혼 전셋집 가격을 듣고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고, 대체 몇십 년을 모아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조차 엄두를 내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다. 만약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취업부터 내 집 마련까지 패키지로 도와준다면 세상에 그런 은인이 없다. 몇몇 사람들에게 화천대유의 실소유자이자 대주주인 김만배 씨가 그런 귀인이었던 셈이다.
검사를 형으로 부르는 기자
권력 감시는 제대로 했을까
호형호제 독점적 이권 나눠
부정부패 토대로 자리 잡아
우리 사회 깊숙한 ‘형님 문화’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작별해야
김 씨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을 “상도 형”, 박영수 전 특별검사를 “영수 형”으로 부르는 사이였다. 그는 곽 의원의 아들을 화천대유에 취직시켰고 7년 근무한 대리 직급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쏘았다. 박 전 특검의 딸도 화천대유에 취직시켰다. 퇴직금과는 별도로 6억~7억 원에 분양받도록 해 준 아파트가 시세로 1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박 전 특검의 아들도 관련 회사에 취직시켰고 그 회사 대표인 인척에게 100억 원을 건넸다는 로비 의혹이 있다. 김 씨의 형님 리스트는 더 이어진다.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전 수원지검장, 이창재 전 법무부 차관, 김기동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 전 서울서부지검장, 최순실 씨 변호를 맡았던 검찰 출신 이경재 변호사 등등. 직원 숫자가 10여 명에 불과한 화천대유의 법률 고문단이 어떻게 해서 대형 로펌을 능가하는 수준일까. 김 씨는 “좋아하던 형님들로 대가성은 없었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렇게 밀어주는 형님·동생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김 씨는 전문기자도 아니면서 법조 출입을 18년이나 했다. 언론사마다 있는 순환 근무 제도가 거기만 없는 모양이다. 법조팀장과 법조기자단 간사를 10년이나 할 만큼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그 덕분에 잘나가는 검사들과 형·동생 사이로 지냈고, 거물들로 법률 고문단을 꾸렸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한다는 의미로 워치독(Watchdog·감시견)에 비유된다. 반대 개념이 애완견인 랩독(Lapdog)이다. 김 씨는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자 키플레이어로 뛰었다. 애완견에서 출발해 땅과 돈을 삼키는 괴수로까지 진화한 기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사회에서 일로 만난 사람에게 ‘형님’이라고 편하게 부르는 관습과 작별해야겠다. 강준만 교수는 2006년에 펴낸 <한국생활문화사전>에서 한국인의 코드로 연고·파벌주의, 학력주의, 학벌주의, 학연주의와 함께 사전에도 없는 ‘형님주의’를 꼽았다. 한국 사회에서 ‘호형호제’ 문화가 공적 영역에서 얼마나 큰 문제를 양산해 내고 있는가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조폭 집단도 아니고 검찰과 언론 사이에 무슨 형·동생인가. 이번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호형호제하는 인간관계는 자기들끼리 이권을 공유하면서 다른 집단에는 극도의 배타성과 편파성을 보인다. 부정부패의 판을 그렇게 까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장동 사건’에는 검찰과 야권 인사가 직간접적으로 다수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자기편끼리 호형호제하는 인간관계는 그동안 정부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김두관 의원만 해도 지난 6월 김어준 씨의 권유를 받고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큰형님 죄송하고,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사과는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어째서 큰형님인가. 지난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가 “(문 대통령이) 유일하게 형이라고 호칭하는 사람 저 하나뿐입니다”라고 외친 걸 보면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김만배 씨가 법조기자 시절 자신을 ‘형’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윤 후보가 TV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해 젊은 출연자들에게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니 그걸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시민의 몫을 부당하게 나눠 가진 김만배 씨의 형님들은 톡톡히 대가를 치를 것이다. 형님·동생하는 문화는 공사 구분을 흐리고, 그 관계에 끼지 못하는 사람을 소외시킨다. ‘형님주의’는 모두를 망치기 십상이다. 언젠가 지인이 나에게 형님으로 불러도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차라리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다. 언니는 주로 여자 형제 사이에 많이 사용되지만, 항렬이 같은 동성의 손위 형제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언니·동생이 짬짜미가 되어 복마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은 적이 없다.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