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항만 투자 예타 문제점과 개선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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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태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부산항 제2 신항 건설사업이 작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으나,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서 부결된 적이 있다. 필자는 예타 보고서를 숙독하면서 현행 예타 지침의 문제점과 조사보고서의 비전문성 탓에 국가 중요 기간산업 정책이 잘못 결정되고 있다는 확신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경제성·재무 분석 구분 없이 지침 적용
비용 산정 등에 항만 특성도 반영 못해
예비타당성조사 정확도·신뢰성 저하
국제 공인 예타 지침안 새로 마련해야

필자는 198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해양연구소에서 인천항 종합개발 기본계획의 경제성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분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 후 미국,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제 항만개발 프로젝트와 해외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예타 이론, 방법론, 자료 분석에 매진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현행 예타 지침(한국개발연구원(KDI), 항만 부문 사업의 예타 표준지침 연구, 2001·2014)과 조사보고서의 이론과 방법론은 학문적 수월성과 실용적 응용성 두 측면에서 모두 불합격 수준이다. 비유하자면, 까다로운 장기인 뇌나 췌장 등을 살리는 로봇수술 같은 최고 기술이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야전병원 수술 교본에 따른 관행이 여전히 행해져 멀쩡한 환자도 죽이는 것과 유사하다.

주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성 분석과 재무 분석에 대한 구분 없이 지침이 적용되고 있다. 전자는 재정이 투입되는 투자안이며, 후자는 순수 민간투자의 경우다. 따라서 예타 대상사업은 전자의 경우로, 국가 경제적 관점에서 비용과 편익이 산출돼야 한다. 일례로, 세금은 부문 간 이연지불로, 비용에 포함돼선 안 된다. 또 선박과 화물의 시간 가치는 장기 기회비용이어야 한다. 일일 용선료로 대신하는 것은 틀린 방법이다. 사회적 할인율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둘째, 수요 추정 시 수출입 화물은 전량 국내 항만에서 처리되고 중국의 카보타지(cabotage) 폐지 시 환적화물은 대부분 빼앗기게 된다는 가정은 이론에 맞지 않고 실제 상황도 설명하지 못한다. 수출입 화물과 환적화물 대부분은 어디에서나 처리 가능한 소위 ‘풋루스(footloose) 화물’로, 화주와 선사는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항만을 선택하게 된다. 더욱이 화주는 직접 지불비 외에 처리 시간, 리스크, 화물 손상, 지연 처리, 예상치 못한 작업 중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만을 선택한다. 과거 환적화물이 전무하던 부산항이 신항 개발로 세계 2위의 환적항으로 발전한 것을 돌이켜 보면 자명한 원리다.

셋째, 비용과 편익 항목 산정 시 동적이고 확률적인 항만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하고 주먹구구식인 가정에 의거해 추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설의 내용 연수, 적정 하역능력, 선석 크기별 대상 선박의 크기와 특성, 선박이 항만에 체류하는 재항 시간, 항만개발이 안 될 경우 예상되는 대안 등은 여러 확률 변수가 종합적으로 결합되는 결과인데도, 현재 분석방법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특히 항만의 수요와 공급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경쟁국의 항만개발 전략에 의한 상호작용의 결과다. 넷째, 항만 편익 분석의 핵심인 재항 시간 추정과 비용 절감분 및 하역 효율성 향상 편익 등에 대한 추정은 1960~70년대 후진국 사례와 유사해 정확도와 신뢰성이 매우 의심스럽다. 즉,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참고하던 수준의 이론과 분석방법에 의존하고 있어 결과가 맞을 확률은 복권 당첨 확률보다 낮다고 여겨진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세계 최고의 연구진과 협력하고, 싱가포르, 홍콩, 유럽의 선진 항만 사례를 참조해 예타 지침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지면 사정상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신규 예타 지침안이 개발돼야 한다.

예타를 담당하는 KDI는 최근 창립 50주년을 맞아 경제 개발 주요 프로젝트 추진 과정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책을 발간했다. 우리나라를 ‘한강의 기적’으로 이끈 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현행 항만 예타를 거쳤다면 대부분 탈락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주요 프로젝트는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도자와 연구원들의 성공 확신에 따라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나라 항만개발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꼽힌다. 세계은행의 항만개발 프로젝트 절반이 실패로 끝났지만, 한국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공 사례다. 현재의 부산신항도 개발안에 상당한 반대가 있었으나, 추진한 결과 세계 3위 허브 항만으로 발전했다. 현재 논의 중인 부산항 제2 신항의 성공 가능성도 명확하다. 성공 신화를 창조한 한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물류 허브 구축사업을 진행하면서 개발도상국마저 폐기 처분한 방법론들을 고수하도록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세계 전문기관들과 협력해 제대로 된 예타 지침서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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