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겠다”던 흙수저·비주류 주류 반발 극복하고 최종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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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누구

1964년 경북 안동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재명 후보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12살부터 학교 대신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다. 이때 프레스에 손목 관절이 으깨지는 골절을 입어 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 이날의 경험은 훗날 이 후보를 정치로 이끌게 된다. 이 후보는 지난달 26일 출연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면서 “세상을 바꿔야겠다 싶었다”라고 밝혔다.

노무현 강연 듣고 인권변호사로
직설 화법·추진력 ‘대중적 인기’
반대로 “감정적·독단적” 악평도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원에서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강의를 듣고 철학에 매료된 이 후보는 노동인권변호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이어오던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2006년 지방선거부터다. 그해 열린민주당에 입당한 이 후보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와 2008년 국회의원 선거(경기 성남분당갑)에서 연거푸 낙선하게 된다. 두 번의 도전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8년 동안 성남시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이 ‘정치인 이재명’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시기다. ‘3대 무상복지’(무상교복·청년배당·산후조리비) 등의 과감한 정책 추진으로 당시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스타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이 후보는 이를 바탕으로 2017년 19대 민주당 대선 경선에도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그는 당시 문재인(57%)·안희정(21.5%) 후보와 치열하게 경쟁, 21.2%를 기록하며 3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와 날선 대립각을 세웠던 탓인지, 20대 대선 경선 초반 이 후보 출마 소식에 친문 지지층의 반발은 거셌다. 이 후보가 민주당 최종 후보로 선정됐지만 당내 일부 지지층에서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나온다면 다른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기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당시의 치열했던 경선 때문이다. ‘사이다’로 소개되는 이 후보만의 직설적인 화법과 추진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반면 감정적이고 독단적이란 악평도 쏟아진다.

경기도에서만 정치 활동을 계속해 온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터전이자 고향인 부산·울산·경남(PK) 인사들 끌어안기에도 공을 기울였다. 이 후보는 지난해 5월 총선이 끝난 뒤 당시 이재강 부산 서동 민주당 지역위원장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임명한 데 이어 정세균 전 총리를 적극 지원했던 전재수 의원을 영입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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