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어떤 불평등
최혜규 라이프부 차장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는 부산의 10월은 부산에 살아 행복한 계절이다. 올해의 감상은 더 각별한 데가 있다. 한 해를 거르고 다시 깔린 레드카펫에서, 방역을 위해 비닐장갑을 받아 끼고 마이크를 든 채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 관객의 목소리에서, 선착장과 공원에서 열린 ‘동네방네비프’ 상영에서 잠시 잊었던 축제의 공기를 느낀다. 거기에는 곧 다시 찾아올 일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설렘도 있다.
26회를 치르는 동안 영화제의 풍경은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달라진 옷차림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올해는 유례 없는 10월 더위로 한낮에는 여름 날씨에 버금가 겉옷을 입을 새가 없었다. 지난 6일 영화제 개막 이래 부산도 줄곧 최고기온이 27도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다. 10일에는 낮 최고 28.4도, 평균기온도 24.9도를 기록했으니 반팔이 어울리는 날씨가 맞았다.
과거는 어땠을까. 2011년 10월 초순 날씨를 찾아보니 평균기온 18~19도를 오갔고, 꼭 10년 전 10월 10일에는 낮 기온이 27.4도까지 올랐지만 최저기온은 16.7도로 떨어져 평균기온은 21도에 그쳤다. 영화제 야외 상영을 보려면 두꺼운 겨울 외투나 담요가 필요한 날씨였다. 기후변화는 삼척에서 바나나가 열리는 것이나 지구 반대편의 산불뿐만 아니라 갖가지 양상으로,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안타깝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인간이고, 2040년이 되기 전에 1.5도 지구온난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발표한 게 올 8월이다.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내놓은 이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세상은 지구종말 카운트다운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대개 사람들은 부정적인 전망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한다.
이런 현실에 더 민감한 세대들은 기후우울증을 호소한다. 2040년이면 지금 10대가 30대가 되고, 어쩌면 부모가 되어있을 나이다. 그 때 지구가 더이상 ‘살 만한 곳’이 아니게 될 거라는 ‘과학’을 모른체하는 어른들을 보는 그들은 두려움과 무력감, 상실감과 분노를 느낀다. 20대와 30대는 여기에 다음 세대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낀다. 기성세대들이 마땅히 책임감을 가져야하지만 현실은 이들을 ‘유난’ 취급하기 일쑤다.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주도 국제연구팀의 최근 예측에 따르면 2020년생은 앞으로 일생 동안 평균 30번의 폭염을 경험한다. 조부모 세대인 1960년생이 겪는 폭염보다 7배나 많다. 이러한 세대 간 기후불평등은 어쩌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나 자산의 불평등보다 더 중요하고 파괴력이 있는 의제다. 공론장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고 예산과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세력은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의 중반을 넘어선 11일은 겨우 가을 날씨를 되찾았다. 서태평양의 고수온 현상으로 인해 아열대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하게 발달하면서 찾아온 이번 더위도 곧 수그러들 것이라고 한다. 서서히 돌아올 일상이 지금 세대에게도, 다음 세대에도, 그들의 자녀 세대들에게도 아름다울 수 있도록, 지구가 여전히 살 만한 곳일 수 있도록 선거 공약들을 더 꼼꼼하게 뜯어봐야하겠다. i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