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다
그룹홈·자조모임 등 ‘무혈연 가족’ 돌봄휴가 등 정부 지원 대상 제외 오로지 유대감만으로 위기 견뎌 혈연 바탕 ‘전통적 가족관’ 쇠퇴 공동체 개념 대안 가족 증가세 법적 가족 범위 확대 고민해야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에 입적한 자는 가족이 된다.’ 1958년 제정된 민법 제779조에 나온 가족의 정의다. 여기에서 ‘가’는 집[家]을 뜻한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일부 조항이 개정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족으로 인정받으려면 결혼을 하거나, 피를 나눠야 한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다.
사회적 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삶의 형태도 복잡해졌다. 취업·진학을 위해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증가했고, 비혼공동체나 노인주거공동체 같은 새로운 가족도 생겨났다. 혼인이나 핏줄 대신 ‘마음’으로 이어진 가족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법적 테두리 밖에 있다.
그룹홈·자조모임 등 ‘무혈연 가족’
돌봄휴가 등 정부 지원 대상 제외
오로지 유대감만으로 위기 견뎌
혈연 바탕 ‘전통적 가족관’ 쇠퇴
공동체 개념 대안 가족 증가세
법적 가족 범위 확대 고민해야
4월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가부는 “건강가정기본법, 민법 등을 개정해 법적 가족 범위를 확대하고 대안적 가족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 유형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안적 가족공동체란 비혼, 노년동거 등 법률상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가족 변화에 따른 조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9년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전체 가구의 29.8%에 불과했다. 37%였던 2010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면, 2인 이하 가구는 2015년 전체 가구 중 절반을 넘어선 뒤 꾸준히 증가해 58%를 차지했다. 지난해 여가부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서도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의견에 응답자의 69.7%가 동의했다. 10명 중 7명이 대안적 가족공동체 역시 가족이라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는 혼인이나 혈연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관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존의 가족관에서는 가족의 주된 기능이 생식과 양육이었지만, 이제는 애정을 공급하는 정서적 기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여가부는 가족의 정의를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를 개정할 계획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대안적 가족공동체도 재산을 상속하거나 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가족으로서의 법적 권리가 보장된다.
는 올 8월부터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친밀한 ‘또 다른 가족’을 만났다. 그룹홈, 탈시설장애인 모임, 노숙인 자조모임 등이 중심이 된 이른바 ‘무혈연 가족’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이면서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법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함께 거주하면서도 민법상 가족으로 분류되지 않아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었고,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 등의 제도도 활용할 수 없었다. 때로는 함께 산다는 사실 자체를 숨겨야만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가족돌봄휴가 등 정부 지원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공동체는 온전히 유대감만으로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견뎌 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처한 차가운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한 그룹홈 입소자는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여가부가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의 인식변화 등은 여전히 과제다. 7년 전부터 추진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을 포함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이 반대여론에 막혔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정부의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에 그칠 공산이 있는 것이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