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상영작 리뷰] 파얄 카파디아 감독 ‘무지의 밤’…사적인, 그러나 가장 정치적인 다큐
올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 상인 황금눈상을 수상한 파얄 카파디아의 장편 데뷔작 ‘무지의 밤’은 독특한 작품이다. 영화는 인도의 한 대학교 기숙사 선반에서 메모리 카드와 스크랩된 신문기사, 그리고 편지와 말린 꽃이 담긴 상자가 발견됐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크고 작은 기억들과 기록 조각들
소용돌이치는 인도 현주소 관통
다소 미스테리하게 시작한 영화는 한 여인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어딘가에서 춤을 추는 젊은 인도남녀 모습이 흑백이미지로 나온다. 하지만 자막과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딱히 연관성을 이루진 않으며, 영화도 별다른 부연을 덧붙이지 않는다. 서로 무관한 말과 목소리와 이미지들의 조합. 영화는 이렇게 각자의 세계 속에서 나뉘어 있던 조각들을 찬찬히 모으며 시작한다.
이후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의 취임과 그에 관련된 인도의 정치·역사적 단면들, 인도 영화 텔레비전 대학(FTII)의 부당한 총장 인사와 학생들의 반응, 그리고 시위 등에 대한 파운드 푸티지들이 파편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또 오프닝 편지를 나직하게 읽어주던 여인의 목소리도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개별 요소들을 어떤 총체적 역사로서 서술하지도, 그렇다고 사적 기억으로만 구성하지 않는다. 다만, 이 구성 속에 묘하게 시적이고 추상적인 감흥을 아릿하게 뒤섞는다.
요컨대 ‘무지의 밤’은 아주 개인적인 기억과 편지라는 기록, 그리고 인도 영화와 영화인들의 현재, 나아가 인도인들이 겪고 있는 종교적, 정치적 소용돌이를 대담한 방식으로 몽타주하며 각각을 담고 있는 푸티지 영상들을 결합하거나 나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무지의 밤’은 딱히 이 크고 작은 기억과 기록의 조각들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덤덤히 편지를 읽으며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줄 따름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떤 사적인 찰나들과 인도 정치사와 혁명사의 순간들을 무작위적으로 대면했을 뿐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관객은 어느새 ‘무지의 밤’이 담고 있는 인도의 크거나 작은 단면들을, 그 전체이자 일부로서 함께 통과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트라 켈리의 말을 이토록 담대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현한 영화가 있을까?
그렇게 ‘무지의 밤’은, 추상적인 진술과 몽타주를 통해 이윽고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다른 이의 깊숙한 어딘가와 교감하게 해주는 하나의 시가 된다. 여기엔 기억과 기록, 사적이거나 공적인 경험들, 그것을 담고 있는 목소리와 이미지와 얼굴들과 시간들, 아프고 고단하지만 동시에 귀하고 유일한 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시의 형식으로 담는 영화가 있다. 우리는 때로, 다른 이의 지나온 시간과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하고 아름다운 것들이란 건 알고 있다. 바로 ‘무지의 밤’이 그러한 것처럼.
구형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