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지는 무궁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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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에/ 키 작은 소나무 하나~.’ 이런 노랫말을 가진 가요가 나온 때가 1988년이다. 간이역의 낭만과 느림, 소박함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때 이미 기차가 안 서는 간이역이 많았던 모양이다. 열차 이름에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같은 정겨운 호칭을 붙였던 시대였다. 시대의 변화는 교통 환경의 전환을 동반한다. 열차는 ‘KTX’니 ‘SRT’ ‘ITX’처럼 훨씬 빠른 교통수단으로, 이름도 글로벌하게 바뀌었다. 간이역은 관광지나 탐방지로 변한 지 오래다. 지금은 간이역은커녕 지역의 주요 지점마다 이동 통로 역할을 담당했던 열차역조차 무용지물인 경우가 태반이다.

고속 열차가 생긴 이후 ‘서민의 발’ 노릇을 한 것은 무궁화호다. 완행열차였던 비둘기호와 통일호는 각각 2000년, 2004년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무궁화호 열차마저 기존 노선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진주역에서 서울역을 오가던 열차는 지난 8월부터 동대구역까지만 운행되고 있다. 전라선에서 마지막 남은 무궁화호 심야 열차는 지난 7월 31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던 열차라 안타까움이 크다. 무궁화호 감축 운행으로 비싼 고속 열차를 이용해야 하는 밀양 주민 역시 큰 불편에 빠져 있다.

최근 코레일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무궁화호 운항 횟수가 줄어든 수치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무궁화호 열차의 경부선·호남선·중앙선 3개 노선에 걸쳐 무려 36%가 감축됐다. 평일에는 44편, 주말에는 50편이 줄었다. 30편 이상이나 줄어든 호남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경부선도 4편에서 6편까지 감축됐다. 지난 8월에는 14개 열차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코레일이 무궁화호 구간을 대폭 줄이거나 없애 버렸다.

고속 열차가 닿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도 가고, 가족·친지도 방문하던 이용객들은 손발이 묶여 버렸다. 고속 열차가 있는 데로 가서 갈아타는 번거로움은 물론이고 환승에 따른 비용 상승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동권 제약을 받는 지역민의 서러움이 더 크다는 점에서 지역 홀대의 적나라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코레일이 교통 취약 계층의 이런 고충을 외면하는 것은 수익성 지향 탓이다. 공공성을 내팽개친 공기업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을 먼저 살피고 지역과 약자의 처지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아쉽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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