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BIFF에서 즐긴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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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가을이라고 하기엔 여름처럼 더운 날씨. 코로나 시국 이후 2년 만의 정상 개최. 전체 좌석 수 50%만 운영돼 여전히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지만,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10월은 분명 영화의 계절이다. 특히 올해 영화제는 부산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동네방네비프’를 운영해 기대가 크다. 어디서나 영화를 즐길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영화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누구나 영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구샤오강 감독 영화 ‘푸춘산의 삶’
올해 BIFF 중국 감독 특별전 초청
 
푸춘산 터 잡고 사는 가족 이야기
다큐처럼 자연 풍광 보듬어 인상적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초청 화제

이번 영화제 역시 보고 싶은 영화는 너무 빨리 매진된다며 한탄하며 돌아설 찰나, 극적으로 누군가 취소한 표 한 장을 구할 수 있었다. 한 폭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으로 시작하는 영화. 영화가 전하는 풍경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온 세계가 푸춘강의 의연함처럼 그렇게 잔잔히 평화롭게 흘러간다면 좋으련만 삶은 언제나 내 마음과 다르다.

‘푸춘산의 삶’은 중국 푸춘강과 푸춘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머니의 칠순을 맞아 모두 모인 가족들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4형제 중 누가 어머니를 부양할지 논의한다. 형제는 각자의 사정들로 인해 노모를 모실 형편이 여의치 않다며 회피하기 바쁘고, 결국 형제들이 빚을 나눠서 갚아준다는 조건으로 셋째가 노모를 모시게 되지만 그 또한 형편이 좋은 건 아니다.

가족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하나의 사건을 주된 서사로 가져가면서 갈등을 전면에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르다. 물론 형제간의 갈등, 부모봉양 문제, 딸의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과 빚는 문제 등을 다루지만, 강렬한 드라마나 사건으로 표면화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서사는 이 가족의 문제를 부각하지 않는 대신, 가족의 삶이 푸춘산과 더불어 흘러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익스트림 롱쇼트를 빈번하게 사용하며 푸춘의 사계절을 한 점의 화폭처럼 담아내고, 10여 분간의 롱테이크는 인물들의 삶을 밀도 있게 비춘다. 구샤오강 감독은 마치 한편의 다큐처럼 자연의 풍광을 보듬고 그린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한 켠에 도시의 변화를 감지케 하는 내용도 함께 담아낸다.

영화에는 언젠가 푸춘산의 풍경이 변화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환기시키는 장면들이 많다. 재개발 열풍이 일고 있는 동네는 곧 버려진 공간이 되고, 잘 정비된 고층의 아파트들은 부동산의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때 감독은 이 변화를 감지하면서 푸춘산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최근 중국영화들을 보면 중국의 현실이나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영화는 전통과 역사, 변화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는 황거망의 ‘푸춘산거도’도 푸춘의 수려한 경치가 사라지지 않아야 할, 지켜져야 할 역사와 다르지 않음을 알린다. 잘 그려진 산수화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통하게 된다고 하는데, 감독이 전하는 이미지 또한 눈과 마음, 정신까지도 감응시킨다.

1988년생 감독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인 ‘푸춘산의 삶’은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의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후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베스트 10에 올랐으며,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에 견줄 만하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다. 사실 영화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회 상영을 했는데 당시에는 보지 못하다가, 올해 영화제에서 ‘중국영화 특별전’이 신설되면서 다시 초청을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아마 오래 후회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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