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28 > 퇴고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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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좋은 글은 읽는 이에게 정보나 재미나 감동을 준다. 아니면 시간이라도 때워 준다. ‘좋은 글’이 그렇단 얘기다. 그런 글은, 걸리는 데 없이 술술 잘 읽힌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좋아야 좋은 글인 것.

‘건축 예산은 추가 공사 등으로 20억 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이 문장이 껄끄러운 건 토씨(조사) ‘으로’가 연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떻게 손보는 게 좋을까.

‘건축 예산은 추가 공사 등으로 배 이상인 20억 원으로 늘었다.’

별 어려울 게 없다. 이렇게 어순만 바꿔도 술술 읽힌다. 아래 문장도 같은 꼴.

‘9억 원짜리 주택을 거래할 때 매매 수수료 상한액은 810만 원에서 450만 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역시 어순을 바꾸면 매끄러운 문장이 된다.

‘9억 원짜리 주택을 거래할 때 매매 수수료 상한액은 810만 원에서 절반 수준인 450만 원으로 떨어진다.’

이처럼 글은, 매만지는 만큼 반응을 한다. 이거, 얼마나 정직한가. 이게 바로 퇴고하고 교열하는 이유다.

‘카페를 이달 중 완공을 목표로 새로 짓고 있었다.’

이 문장도 붙어 있는 ‘목표로’와 ‘새로’ 때문에 조금 껄끄러운데, ‘이달 중 완공을 목표로 카페를 새로 짓고 있었다’로 바꾸면 깔끔해진다.

‘결혼선물로 받은 돈으로 산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하며 나체로 수영하며 대화하는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어느 신문에서 본 문장인데, 아주 난삽하다. 토씨 ‘로, 으로, 로’와 동사 ‘하며, 수영하며’가 겹쳤기 때문. 일단, 앞부분부터 손보자.

‘결혼선물로 받은 돈으로 산 자전거로’는 ‘결혼선물로 받은 돈으로 산 자전거를 타고’나 ‘결혼선물로 받은 돈으로 자전거를 사서’면 될 듯하다. 또 ‘신혼여행을 하며 나체로 수영하며’는 ‘신혼여행을 하면서 나체로 수영하며’나 ‘신혼여행을 하며 나체로 수영하면서’로 손보면 되겠다. ‘수영하며 대화하는’은, 수영과 대화를 동시에 하는 일이라는 걸 강조할 요량이 아니라면 ‘수영하고 대화하는’이 좋을 터. ‘모습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로 줄일 수 있겠고…. 그러면 저 문장은 이렇게 바뀐다.

‘결혼선물로 받은 돈으로 산 자전거를 타고 신혼여행을 하면서 나체로 수영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

원래 문장과 비교해 보면, 퇴고와 교열에 들이는 품을 절대로 아까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단지 쓰기만 하는 게 아닌 것이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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