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피었다" 하동 코스모스 단지
하동 북천면 직전리에 화사하게 피어난 코스모스, 코스모스 군락 사이를 걸어가는 중년 부부, 이색 작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프러포즈의 길’(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9월 24일부터 4일까지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렸다.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아직 꽃 잔치는 끝난 게 아니다. 직전리 들판은 화사한 코스모스와 백일홍 꽃이 만개해 여전히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철로 따라 바람에 흔들리며
백일홍·코스모스 옹기종기
꽃밭 파묻혀 추억 만들기
500m 꽃 장식 터널도 재미
여주 등 넝쿨식물 주렁주렁
꽃길 달리는 레일바이크도
■코스모스와 백일홍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백일홍 꽃 군락이다. 축제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이 빨개진 백일홍이 두 팔을 활짝 벌려 사람들을 맞이한다. 주홍색, 분홍색, 노랑색 등 백일홍 꽃 색깔은 다양하다. 축제현장에 놀러와 신이 난 시골처녀 같기도 하고, 장터에서 흥분한 시골총각 같기도 하다. 장미나 백합과 달리 꽃 색깔이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관람객들의 마음과 발길을 잡아당긴다.
관람객들은 백일홍 꽃 군락 사이로 들어가 때로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때로는 벗은 채 화사한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이곳에서는 휴대폰을 ‘셀카봉’에 매달아 위로 높이 들고 아래를 향해 사진을 찍으면 꽃 사이에 사람이 묻힌 것처럼 꽤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백일홍 꽃 군락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코스모스 구간이 나타난다. 코스모스는 40 년 전 ‘국민학교’를 오갈 때 가을이면 시골길이나 논두렁길에서 함께 학교까지 걸어주던 꽃이다. 바람에 따라 몸을 한들거리면서 가끔 얼굴을 간질이기도 하고, 거꾸로 때로는 걸음을 방해하기도 했다.
코스모스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꽃이다. 씨를 뿌린 다음부터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운다. 코스모스 꽃잎은 사방팔방으로 가지런하게 뻗어 있다. 멕시코에서 코스모스를 처음 발견한 스페인 사제들아 마치 질서정연한 우주와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서 이 꽃에 ‘우주’라는 뜻인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코스모스 단지에는 코스모스가 옹기종기 모여 가을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산들거리고 있다. 코스모스는 60~190cm까지 큰다고 한다. 이곳의 코스모스는 대개 150cm 이상으로 매우 큰 편이다.
단지에서 코스모스 그림이 가장 잘 나오는 곳은 백일홍 꽃 군락에서 ‘플라워 뷰’라는 글자가 적힌 하얀 건물로 걸어가는 흙길이다. 왼쪽에서는 철로를 따라 코스모스가 하느작거리고, 오른쪽에서는 꽃 군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걷다가 가끔 꽃 사이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얼굴만 드러낸 채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다.
하얀 건물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가장 화사하게 피어 있다. 며칠째 흐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주 맑게 개어 있다. 텅 비어 있으면 너무 허전할까 봐 하얀 뭉게구름이 느긋하게 하늘을 채우고 있다. 그 아래에 서 있는 하얀 건물과 그 뒤로 보이는 푸른 산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코스모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코스모스 군락 위로 몸을 던지면 꽃들이 침대처럼 푹신하게 밑을 받쳐줄지도 모르겠다. 가끔 꽃들이 손가락을 내밀어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간질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50대 후반~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정한 부부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도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묻어 나온다. 꽃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밝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꽃 터널과 레일바이크
코스모스 단지의 풍경은 꽃에서 그치지 않는다. 꽃구경을 마친 뒤에는 ‘프러포즈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 장식 터널 산책이 기다리고 있다. 별처럼 생긴 꽃인 둥근잎유홍초가 바깥을 에워싸 그늘을 드리운 터널이다. 총 왕복 거리가 500m 정도여서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걸어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둥근잎유홍초 꽃은 참 재미있고 귀엽게 생겼다. 얼핏 보면 장식용 조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화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터널은 거짓말을 약간 보태서 다른 지역의 꽃 터널과는 달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관람객은 이 꽃 터널의 진짜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입구에서 사진 한두 장만 찍고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포토 존’이 있는 구역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는 순간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난다.
희한하게 생긴 온갖 농산물이 터널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어릴 때 집에서 키웠던 수세미는 물론 산에 올라가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으름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여주, 단호박, 뱀오이, 조롱박, 도깨비박 등 희한한 모습을 가진 온갖 작물도 곳곳에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넝쿨식물은 6종류에 1만 5000그루라고 한다. 각종 넝쿨식물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신비하고 흥미로운 풍경은 햇살이 따가운 코스모스 단지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를 달래기에 충분한 장면이다.
코스모스 단지와 꽃 터널에서 1.5km 떨어진 곳에는 북천역-하동레일파크가 있다. 예전에는 경전선이 달리던 곳이었지만 북천역에서 양보역까지 철로 구간을 레일파크로 바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이다. 북천역-하동레일바이크는 코스모스 단지에 있는 북천역과는 다른 곳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레일바이크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검은색 기차가 레일바이크를 매달고 북천역-하동레일바이크에서 양보역까지 이동한다. 승객들은 양보역에서 내려 레일바이크를 타고 북천역-하동레일바이크로 돌아간다. 철길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있어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