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대면 세상으로의 무작정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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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10월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전국이 요란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지역 축제가 대거 개막하였고, 많은 축제가 ‘위드 코로나’를 빌미로 대면·접촉 행사를 표방하였다. 부산이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도 작년과는 판이한 형식으로 행사를 시작했고, 마치 지난 1년분을 만회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가열 차게 대면 행사를 홍보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부산만의 현상은 아니다. 부산영화제보다 하루 늦게 개막한 목포문학박람회 역시 목포문학관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대면 행사를 준비했다. 유명 문인이 많기로 유명한 목포답게, 지역 출신 시인·소설가·극작가·평론가를 앞세워 대규모 ‘관객몰이’를 기획했고 관객 동원까지 시행하며 대대적으로 행사 확대를 꾀했다.

국내 축제 ‘위드 코로나’ 빌미로
대면·접촉 행사로 전환 잇따라
 
코로나로 비대면 회의·심사 안착
‘직접 만나야 행사 진행’ 편견 탈피
공정하고 유연한 세상 가능성 확인
새롭게 확보한 현명한 길 수용을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심정은 매우 착잡하다. 근 2년 가까이 행사다운 행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의 방역이 느슨해지자 대규모 행사를 벌이겠다는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드 코로나를 현실적 대안으로 기정사실화화면서, 그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너무 쉽게 내팽개치고 있다.

한동안 우리는 직접 만나야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술대회는 반드시 한자리에 모일 때만 시행될 수 있다거나, 중요 회의는 반드시 직접 대면했을 때만 효과가 있다는 편견이 그것이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여기에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동이 싫으면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발표를 시키고,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왕복 교통비를 지불하기 시작하고, 원거리 출장의 노고를 그나마 인정하게 된 시점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는 이러한 세상의 불합리를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

점차 온라인 학술발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회의뿐만 아니라 심사까지도 비접촉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비대면·비접촉 심사가 더 공정할 수 있다는 결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세상은 끔찍한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선입견을 깨닫고 한결 공정하고 유연한 세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은 작지 않은 위안이었다.

그런데 위드 코로나를 빌미로, 이러한 발견이 한순간에 무시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올해 방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세상의 많은 영화와 영화인들이 부산을 떠는 활기찬 난장으로 꾸리려 한”다는 영화제 측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거리와 비용 그리고 교통 상황과 숙박 문제로 직접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나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내실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는 마음가짐이 그 안에서 읽히지 않는 것은 상당한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온라인 상영회가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이었고, 우리가 새롭게 확보한 세상의 현명한 길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목포나 다른 유수한 도시의 행사들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기회만 나면 주어진 예산을 최대한 쓰겠다는 생각이 대면과 접촉 행사를 더욱 부추기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기에, 영화나 연극 역시 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동의는, 함께 볼 수 없고 직접 볼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동의임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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