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뱃길 끊어진 부산항, 더 멀어진 일본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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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3월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현재 개점휴업 중이다.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바라본 부산항. 임성원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3월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현재 개점휴업 중이다.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바라본 부산항. 임성원 기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다녀왔다. 부산항을 출항해 한국 일본 중국에 둘러싸인 ‘동북아 지중해’ 부산 앞바다로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2층 입국장, 3층 출국장을 건너뛰고 엘리베이터는 5층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 다다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중 관계의 변화와 신흥국의 대응’을 주제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16개 지역연구학회가 마련한 제8회 통합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부산항이 보이는 컨벤션센터는 지역연구(Area Studies) 학술대회 장소로는 최적이었다. 세계 지도를 거꾸로 들면 부산항이 세계로 가는 출발점이고, 한국인의 시선으로 국제 지역을 들여다보는 지역연구의 시작점이랄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학술대회는 열띤 분위기 속에 열렸지만 시모노세키와 대마도로 가는 연락선 2척이 출항할 기약도 없이 정박해 있는 국제여객터미널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팬데믹으로 2년째 연락선 운항 중단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개점휴업

 

민간 교류 끊겨 더 멀어진 일본

기시다 내각 출범에도 한·일 냉랭

 

‘가깝고도 가까운’ 양국 미래 위해

부산-규슈 시민들 강력한 연대 필요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신임 총리가 4일 도쿄 왕궁에서 나루히토(왼쪽)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친임식(親任式)을 치르고 있다. 왼쪽 두 번째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신임 총리가 4일 도쿄 왕궁에서 나루히토(왼쪽)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친임식(親任式)을 치르고 있다. 왼쪽 두 번째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연합뉴스


출국장과 입국장이 폐쇄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사실상 무기한 개점휴업 중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3월 여객선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부산~대마도, 부산~시모노세키, 부산~후쿠오카, 부산~오사카 뱃길은 완전히 끊겼다. 2018년 기준 연간 142만 6000여 명의 승객이 오가곤 했지만 지난해 4월 이후 여객 운송 실적은 ‘0명’이다. 뱃길이 끊기면서 ‘조선통신사’ 등 양국의 문화교류도 중단됐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더는 가깝지 않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뱃길이 끊기면서 부산 사람들에게 일본은 ‘멀고도 먼 나라’가 되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파고가 점차 높아지더니 팬데믹으로 한 방에 관계가 두절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특히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인 여행 등 민간 교류가 봉쇄된 것은 양국의 미래에 있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끼리의 관계 개선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지난 4일 일본 제100대 총리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는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관해선 한국 측이 ‘일본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조기에 내놓도록 강하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전화 통화도 전임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취임 9일째보다 더 늦췄는데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표심을 의식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집권 자민당은 총선을 앞두고 숫제 ‘독도 영유권’과 방위비 증액을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양국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본은 14일 2017년 9월 28일 이후 4년여 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오는 31일 총선을 치르며, 내년 여름엔 참의원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상태여서 일본이 한국 정부와의 대화와 협상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고, 한국으로서도 보수 본색의 일본 내각에 꺼낼 만한 카드도 신통치 않은 상황이다.

민과 관을 떠나 한·일 관계가 이토록 경색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게 국제정치의 불문율이지만 양국의 정치인들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여기다 한국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그나마 열어 두고 있지만 일본은 자민당의 62년 집권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세습·파벌정치가 활개 치면서 일본 국민의 정치 무관심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양국 관계에 위기감을 부채질한다. 가업을 계승하는 전통이 뿌리 깊은 일본에서는 세습정치인이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3대에 걸쳐 총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는다’는 말도 나돈다. 증조부는 중의원 의원, 조부는 총리, 아버지는 외무장관을 지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민주당 간사장 시절 부산에서 기자와 만나 “세습의원이 일본에 많은 것은 정치가가 되는 환경이 좋고 특히 금전적 유착이 없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정치개혁을 위해 세습의원 제한제를 역설했다.

정치의 출발은 깨어 있는 시민이고, 변방은 늘 새로운 가능성의 땅이다. 한·일 양국이 서로에게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국경의 관문도시 부산은 왜관과 조선통신사라는 오랜 교류의 역사를 유전자처럼 지니고 있으며 지금도 부산-후쿠오카 포럼, 조선통신사 축제 등을 통해 교류의 전통을 현재화하고 있다. 부산과 규슈의 깨어 있는 시민을 중심으로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문화운동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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