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물품 처분…‘뜯겨 나가는’ 학교 보며 아이들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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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다] ① 좌성초등 폐교 진행 현장

좌천동 증산로125번길의 비탈을 따라 서쪽 끝자락까지 오르면 증산동로의 쌍갈랫길로 나뉜다. 올 1월 6일. 좌성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급경사 아스팔트 위에는 검은색 매직펜으로 그어놓은 듯 차량의 스키드 마크가 선명했다. 증산동로를 따라 들어선 건물 뒤편으로 성곽 같은 축대가 하늘 높이 뻗었다. 이 축대의 꼭대기가 좌성초등의 운동장이었다. 흰색의 3층짜리 학교 건물은 수술대 위의 환자처럼 창백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영하의 날씨에 도로가 얼어붙어 비탈길에는 염화칼륨이 뿌려져 있었다. 이날 아침은 영상 6도로 작업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방학 중이라 텅 빈 운동장 한쪽에는 1.5t 트럭 두 대와 흰 장갑을 낀 인부 7명이 대기 중이었다. 이들은 오전 내로 학교 도서관과 자료실, 병설유치원에서 책 1300여 권, 책걸상, 책장, 캐비닛 등의 물건을 끄집어내야 한다.

67년 역사 좌성초등 올 2월 폐교
학생 56명 인근 학교로 흩어져
폐교 대상 선정까지 철저히 비밀
선정 후엔 ‘폐교 행정’ 쓰나미
모든 물품은 관리전환 대상
학생들 최소한의 물품만 쓰고
나머지는 이전하거나 폐기
새 환경 적응 앞둔 불안감에
학습권도 제대로 보장 못 받아

■러시안룰렛

“여기 파란색 교육청 딱지 붙은 것만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학교 행정실 직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훤칠한 키에 갈색 비니모자를 쓴 인부 한 명이 작업을 지시했다. “그것은 끌지 말고예, 수레에 실으세요. 이렇게.” 간간이 교직원들의 대화도 이어졌다. “학교 소화기는 어떻게 하죠?” “이미 충전해서 범일초등, 수성초등에 나눠줬어요.” “화장실에 점보롤 화장지걸이 있잖아요. 화장지걸이는 그대로 두나요?” “그것도 26일까지 다 떼내야 하는데.”

원도심 산복도로 주변의 작은학교 좌성초등은 67년 역사를 뒤로하고 40여 일 후인 2월 19일 영원히 문을 닫는다. 56명의 학생도 인근 초등학교로 흩어진다. 학교는 사람과 달리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유품이 정리된다. 좌성초등의 모든 물품들은 관리전환 대상이 됐고, 부산시교육청은 다른 학교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좌성초등에서 가져 가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졸업·폐교식 전까지 최소한의 물품만 학생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물품은 다른 학교로 이전되거나 폐기처분되는 것이다.

부산에서 좌성초등처럼 잠재적으로 통폐합 대상인 작은학교(초등 240명 이하·중등 300명 이하)는 모두 130곳으로 부산의 전체 초·중·고 617개교 중 21.1%에 이른다. 16개 구·군별 전체 학교 수 대비 작은학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영도구로 무려 절반 이상(51.7%)이 소규모 학교다. 이어 강서구(47.1%), 사상구(41.7%), 서구(30.4%), 금정구(27.1%) 순으로 작은학교 비율이 높다. 부산에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원도심과 서부산권의 농촌·공단 지역에 이들 학교가 집중돼 있다.

부산시교육청은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발맞춰 내년에도 금정구 서곡초등과 북구 덕천여중, 강서구 가락중 세 곳을 폐교하고, 2025년까지 14개 학교를 추가로 통폐합한다. 당연히 이들 지역의 작은학교가 통폐합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부산시교육청이 폐교 대상 선정 전까지 모든 진행사항을 철저히 비밀로 부치기 때문에 해당 지역사회와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러시안룰렛’ 게임과도 흡사하다.



■비정한 교육당국

갈색 비니모자의 인부는 한 손에 전동드라이버를 쥐고 능숙한 솜씨로 학교를 해체했다. 마치 거대한 참치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발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우선 2층에서 운반된 대형 캐비닛을 세 동강 냈다. 이어 도서관의 블라인드도 떼내자 학교의 역사도, 아이들과 교사들이 만든 추억도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녹아내렸다. 마침 방학 중 돌봄교실에 온 학생 한 명은 학교 해체 현장을 보고 “학교가 공사판이 됐다”고 외쳤다.

교육당국은 좌성초등의 마지막 순간까지 비정했다. 좌성초등은 지난해 연말부터 학교 전체가 ‘폐교 행정’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렸다. 학교가 문을 닫는 시점까지 모든 폐교 절차를 마무리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교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업은 수업대로 하면서 온갖 잡무에 시달렸다.

지난해 좌성초등의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최용준 교사는 “선생님 한 분은 아이들에게 나눠줄 롱패딩을 맞춘다고 업체 여러 곳을 알아보러 다니고 학부모들과 색상까지 조율했다”면서 “저는 졸업식 유튜브 송출을 준비해야만 했는데, 폐교 행정의 상당 부분은 교사의 몫이었다”고 털어놨다.

학교가 사라지는 것도 서러운데 학생들은 학습권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기 중에도 학교 물품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학생들이 받은 심리적인 충격도 컸다. 최 교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이 얼마전까지만 사용했던 음악 교구를 어느 날 갑자기 쓸 수 없다거나 체육관에서도 쓸 수 있는 기구들이 한정되자 많이 당황스러워했죠. 교육적으로 소외를 당한 거예요. 다른 학교로 전학가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텅텅 비어 가는 교실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으니….”

학교 건물에서 인부들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이제 별관의 병설유치원만 남았다. 좌성초등의 마지막 교장인 김호선 교장이 2년 전 부임할 때도 병설유치원은 휴원 상태였다. 마지막 원생은 학교로 출근하던 영양사의 자녀였다고 한다. 인부들은 병설유치원에서도 책걸상 등 각종 물품을 반출해 트럭에 실었다. 노란 원피스에 분홍색 모자를 쓴 인형도 태웠다.

모든 반출 작업이 완료되자 트럭에 시동이 걸렸다. 노란 원피스 인형은 멀어지는 학교를 바라보며 인사를 하듯 스프링 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황석하·손혜림 기자 hsh03@busan.com
올해 1월 6일 오전 부산 동구 좌성초등학교에서는 폐교를 앞두고 물품 반출 작업이 한창이었다. 트럭이 움직일 때 인형이 멀어지는 학교를 향해 스프링 목을 좌우로 흔드는 모습이 학생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황석하 기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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