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가균형혁명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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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사회부 행정팀장

최근 뇌리에 뚜렷하게 남은 두 장면.

“국가균형발전? 지금처럼 말로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어느 술자리의 넋두리가 아니라,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두루 경험한 유력 정치인의 말이어서 천근만근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끝도 없이 몰려드는 사람과 그들의 욕망으로 뭉치고 다져진 수도권은 기득권을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며, 이제 특단의 강력한 행동이 아니면 이전처럼 균형 잡힌 국가로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이어졌다.

블랙홀 대선 정국, 뻔한 네거티브 드라마 재연
비수도권 진정한 부활 내세운 유력 후보 어디에
정권·정부 ‘콩고물’ 매달려선 영원히 미래 없어
지역 민·관 주도하는 ‘국가균형혁명’ 실행할 때

과거 부산에서 대형 개발 사업을 진행했던 어느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부산에 사람과 비즈니스가 없는데 어떻게 오피스 빌딩을 세우나요? 수익성 없으면 다 뜬구름 잡는 얘기입니다.” 부산의 고층 빌딩 수는 전국 최고 수준인데, 대부분 주거용인 상황이 정말 안타깝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딱히 토를 달기 힘들어 두 사람에게 “그렇다면 어떠한 특단의 대책이 가능하겠냐”고 물었지만, 모두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고발 사주, 화천대유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선 정국을 뒤흔드는 네거티브 이슈들이 블랙홀처럼 중차대한 국가 정책들을 빨아들인다. 내년 대선은 끝도 없이 추락해 지면과 충돌하기 직전인 ‘국가균형발전호’를 상승시킬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역 발전 이슈가 주요리에 곁들인 밑반찬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아 지역민들의 걱정은 더욱 크다.

내리막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수도권 일극주의’ 속에 부산·울산·경남권을 포함한 비수도권을 살릴 국가균형발전은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할까.

최근 부산시 초청으로 강연한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이대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감한 도시 혁신과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재생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식상하고 지루할지 모르지만, 숫자는 명확하게 파국을 예고한다. 1975년 수도권의 인구 비중이 31.5%였던 것이 2019년에 5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수도권 평균 인구밀도는 1㎢당 922명에서 2153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급격한 저출생 추세 속에 인구를 빼앗겼으니 지역이 소멸을 걱정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처음으로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2022년까지 실행되는 4차 국가균형발전 계획까지 마련됐지만 사정이 나아지기는커녕 아무도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지 못했다. 이로 인해 출생률은 떨어지고 집값은 치솟는 해악을 오롯이 국민이 짊어지고 있다. 이대로는 100년이 가도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대선 이전에 부울경 특별지방자치단체(메가시티)를 출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공공기관 이전 등 주요 균형발전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문 대통령의 큰 흠결이라는 평가가 많은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메가시티를 통 크게 허락하고, 출범시키는 주체는 지역이 아닌 정부다. 특별지방자치단체 정책 역시 여권이 출발시킨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전후에 출범할 것으로 예상됐던 부울경 메가시티는 다행히 고속열차급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부의 공모 사업과 기재부 예산에 지역이 줄을 서는 구조를 탈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박형준 부산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은 국가균형발전을 대선 주요 공약으로 올려 반전을 꾀하겠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공약화에 성공해도 차기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비수도권 지역민은 토사구팽의 트라우마만 다시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총선과 보궐선거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지역을 돌며 선물 보따리를 풀었지만, 선거 이후 말로만 끝낸 공약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지방’은 시나브로 소멸하기 전에 다가오는 대선에 앞서 국가균형발전이 아닌 ‘국가균형혁명’ 선언을 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살고, 국가의 대들보인 지역이 산다. 국정감사장 앞에서, 국회 앞에서, 대선 유세장에서 민과 관이 함께 손을 잡고 균형발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1인 시위든 헌법소원이든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발전하고 차별화한 제2수도권을 형성해 국가 지원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어울려 사는 훌륭한 커뮤니티, 그리고 산과 강, 바다, 도시 공원까지 잘 보존된 자연이 떠나려는 청년 인재를 보듬는 그릇이 큰 도시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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