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도시’, 누구 겁니까?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에는 이름이 같은 국경 도시가 몇몇 있다.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시, 텍사스주 마타모로스시,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시 등은 인종·문화·지형이 거의 동일하지만, 각각 미국과 멕시코로 도시가 반반 나뉘어 있다. 원래 한 지역이었지만, 현재 1인당 소득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지금도 멕시코 쪽 노동자들이 미국 쪽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고, 주거 수준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도시 번영이 국가의 제도적 측면에 의존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연구자들은 이런 차이가 불평등과 부패라는 고질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멕시코의 부패지수는 세계적으로 매우 높으며, 부패 고리에는 정·재계 핵심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멕시코의 현재 어려움은 부패와 불평등 심화로 인한 공공자원 오용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근대의 가장 극적인 제도 ‘도시계획’

토지 이용의 시민 통제 기반 마련

최근엔 권한 행사의 공공성 강조돼

대장동 사태, 부패 고리로 공익 약탈

사익 추구로 도시번영 조건 걷어차

‘도시’는 온전히 시민의 것 인식 중요


최근 성남시의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이 국민의 목덜미를 잡게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공공의 이름으로 시행된 도시개발 사업에서 과도한 ‘개발이익 사유화’가 문제다.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공공 권한인 ‘토지 강제 수용권’을 행사해 원주민의 토지를 값싸게 매입했다. 이후 ‘토지용도 변경’ 등 공공의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 투자라는 시대적 광풍에 편승한 이 사업은 소위 ‘대박’이 났다. 1조 원 이상 개발이익이 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이익 대부분은 소수 민간 업자가 챙겼다. 심지어 1억 원 정도를 투자한 사람이 수천억 원의 개발이익을 독식했다. 성남시는 이 중 5500억 원 정도를 환수했다고 한다.

한 푼의 개발이익 환수는커녕 주변 도로 건설 등 기반시설마저 제공해야 했던 부산 ‘엘시티’ 등에 비해 그나마 나은 결과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유력 정치인과 법조계 인사들의 ‘50억 클럽’ 등 서민들로서는 믿기 어려운 부패의 연결 고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엘시티 문제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그들만의 리그’인 부패의 연결 고리가 우리나라 도시개발 사업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막대한 도시개발 이익이 공공으로 다시 흘러가는 선순환이 아닌 소수 민간 업자나 권력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부패의 악순환이다. 중세 왕조 국가에서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에서 가장 극적인 것 중 하나가 왕이 가졌던 토지 이용(land use) 독점권을 없애고, 이를 시민사회나 국가의 공적 이익 아래 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장이 주관하는 ‘도시계획’ 결정 아래 토지 용도가 결정됐다. 이에 기반해 공정한 도시 경쟁의 기반이 마련됐고, 현재의 도시 번영도 이러한 도시계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 이전엔 토지 이용을 포함한 상업적 행위에 대한 왕실의 독점권을 이용하는 대가로 민간은 돈을 바쳐야 했다.

근대 제도의 최고 혁신은 이런 독점권 대신 도시계획 개념을 도입해 투기를 방지한 점이다. 이게 근대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194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뉴딜 정책을 설계했고, 미국 최초의 도시 및 지역계획 학과를 시카고대학에 만든 렉스포드 턱웰(Rexford Tugwell)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도시계획의 권한을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입법·사법·행정의 3권 중 행정에서 분리해 ‘제4의 권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립적 ‘도시계획위원회’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하는 그의 주장은 “도시계획 권한 행사의 공공성이 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엘시티나 대장동 문제에서 보듯 토지 투기 세력은 공공의 권한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기 위해 부패 고리를 활용한다. 공적 이익을 위한 도시계획의 여러 권한 중 특히 강제수용권이나 용도변경권 등의 사적 활용을 위해 정치·행정·사법, 심지어 언론까지 동원한다. 이렇게 되면 사회 환원을 통해 도시의 지속적인 발전에 투입돼야 할 자양분이 없어져 사회적 손실이 발생한다.

도시 번영의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도시 사회 내부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정당한 보상을 실현하는 조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시민사회의 공동 번영을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공정과 부패의 연결 고리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도시 개발, 토지 이용 등 공공 행위는 투명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뤄지도록 제도를 재정비하고 개발 이익도 사회적으로 적절히 환수돼야 한다. 시민사회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과 같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다시는 우리의 ‘도시’를 팔아 먹지 못하게 해 ‘도시’가 온전히 시민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