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아름다운 동시가 그림책이 된다면…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달빛 조각/윤강미

‘가자, 가자, 가자./숲으로 가자./달 조각을 주으러/숲으로 가자.//그믐밤 반딧불은/부서진 달 조각’(‘반딧불’ 중).

윤동주 동시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으로 만난다. 윤강미 작가의 은 여름밤 숲속으로 산책을 하러 간 가족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쉬고 싶은데, 엄마와 이모는 아주 멋진 걸 보여주겠다며 숲에 가자고 한다. “아직 있을까?” “그러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두 어른의 대화에 어떤 것을 보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회화 전공한 윤 작가 두 번째 그림책
자연미·가족애·아이들 성장 등 담아
작은 반딧불이 커다란 보름달이 되고
그 달이 멀리 우주로 연결되는 감성 표현

은 회화를 전공한 윤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다. “회화 작품은 소수의 관람객, 컬렉터와만 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단점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됐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가 손쉽게 향유할 수 있는 그림책은 그림과 시와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윤 작가가 첫 그림책을 낸 것은 2019년이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 ‘1회 언-프린티드 아이디어’ 전시에서 관람객 투표를 통해 출판 지원 작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창비)을 펴냈다. 이 그림책으로 윤 작가는 2020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회색 도시를 나무와 꽃이 가득한 도시로 바꾸는 기발한 상상력을 담아낸 책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대만, 이탈리아, 터키 등에서 번역 출간됐다.

은 달이 사라진 그믐밤을 깊은 초록색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윤동주의 동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15년 전 윤 작가는 집 주변에 숲이 많은 곳에 살았다. 저녁 식사 후 가족이 숲으로 산책하러 자주 갔는데 휙 지나가는 하나의 작은 불빛을 발견했다.

“찰나의 순간, 그 섬광에 대한 감동으로 반딧불이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윤동주의 ‘반딧불’ 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에 반해 시 그림책을 만들어 보려 했으나 원문이 너무 짧았다. 작가는 윤동주의 시를 자신의 이야기로 발아해서 그림책을 완성했다.

‘달빛 조각’이라는 책 제목에는 작은 반딧불이 불빛이 모여 커다란 보름달이 되고, 그 달이 멀리 이어져 온 우주로 연결되는 감성이 담겨 있다. 작은 섬광의 아름다움이 지속가능한 자연환경으로 오래오래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다.

윤 작가는 그림책 창작에 노스탤지어적 갈망이 투영되어 있다고 전했다. “농부의 딸로 20대까지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농촌에서 살 때는 도시에서 사는 것을 갈망했는데, 도시 사람이 되고 보니 시골 생활을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하고 있더군요.”

그림책 속 각 장면은 글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윤 작가는 책에 등장하는 가족의 동선을 언급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엄마와 이모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으로 처리했다가, 서서히 두 어른 사이에 아이들을 배치해서 어른이 아이를 보호해 주는 방식으로 표현했어요.” 밤새의 울음소리, 밤바람, 달맞이꽃 향기를 느끼며 걷던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을 앞선다. 아이들이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 속에 동화되어 앞장서 걸어가는 모습. 작가는 이를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연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딧불이가 가득한 곳에 도착한 장면에서는 동물들 모습이 드러나지만, 가족은 검은색 실루엣으로 처리됐다. 윤 작가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가족애, 아이들의 성장을 담은 그림책에는 ‘여성 가장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글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등장한 가족의 구성원을 엄마, 이모, 아이들로 설정했다.

“숲길에서 반딧불을 발견했을 즈음에 여동생이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런 가족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보았을 때 나름 위로를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책의 뒤쪽 가족이 함께 멀리 바라보며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에서는 언니가 여동생의 팔을 잡아준다. 현실의 여동생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윤 작가의 마음이다. “책 속의 엄마는 나 자신이자, 여성 가장으로서의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집으로 돌아갈 때 언니가 동생에게 손전등을 비춰주는 장면은 여동생을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윤강미 지음/창비/40쪽/1만 30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