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언론사 플랫폼 강화하고 탈포털 전략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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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와 전통 사업자 간의 충돌과 갈등이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타다, 배민, 로톡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 사업자는 현행법 조항을 거론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선진 각국은 탈규제 정책을 통해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서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어서다. 디지털 전환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산업군이 스스로 생존을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문제를 가볍게 여겨선 안 되겠지만,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 충돌의 원인을 오롯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돌리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이들을 쉬이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반사회적 사업자로 규정하는 건 디지털 경제의 작동원리에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하려는 데서 비롯된 정의롭지 못한 처사일 수 있다. 디지털 경제는 사업자가 시장 조기 진입을 통해 제품의 표준화를 이끌어 내면, 네트워크 외부성이 작동하면서 시장을 선점하고 소비자를 독점할 수 있는 특성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포털이 한국 뉴스 이용자의 절대다수를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언론, 포털에 종속돼 주도권 상실
저널리즘 퇴보·민주주의 후퇴 우려
뉴욕타임스 온라인 기사 유료화 성공
자체 디지털 구독자 확보 노력 필요

플랫폼 사업자와의 충돌 문제는 언론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디지털 전환기 생존전략 모색에 부심하는 언론 사업자에게 대형 포털은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뉴스 콘텐츠의 유통을 과점하고 있는 사업자가 포털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사업자들은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와 AI(인공지능) 알고리즘 같은 디지털 기술을 뉴스 생산과 유통 과정 전반에 도입하며 디지털 전환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뉴스 유통의 주도권이 포털로 넘어가고, 언론이 생산한 뉴스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이래로 20여 년째 언론은 숙명과도 같은 포털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위의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세계 4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에 따르면 한국 뉴스 이용자가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방문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4%(세계 평균 25%)에 그치고 있으며, 77%(세계 평균 33%)가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기현상이다. 이처럼 온라인 뉴스 유통이 포털에 종속된 상황은 언론에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약화를 유발한다. 플랫폼은 개별 언론사보다 우월한 이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확보한 언론사 독자를 확고하게 붙잡아 두고 있다. 뉴스 사업자인 언론사는 광고와 독자 모두를 플랫폼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할지라도 뉴스 사업자로서 언론사들은 독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독자의 직접 구독에 기반한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는 장기적인 전략을 포기해선 안 된다. 2017년 광고 중심에서 구독 중심으로 사업전략의 방향 전환을 선언한 미국 뉴욕타임스는 2020년 3분기에 디지털 구독자 700만 명을 돌파해 온라인 수익이 인쇄판 구독 수익을 추월하는 성과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다수 경쟁 언론 사업자들의 결정과는 달리 2019년 애플의 뉴스 유료 서비스인 애플뉴스플러스에 불참을 선언하는 등 독자와의 직접적인 관계 구축 전략 기조를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포털이 주도하고 있는 왜곡된 언론 생태계를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길은 요원해 보이지만, 언론 발전과 공론장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플랫폼 기업과 전통산업의 갈등에서 보듯이 언론사와 포털의 이해 충돌과 갈등은 디지털 전환기에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며 상호 이해와 양보를 통해 풀어 갈 수 있는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5월 네이버와 다음이 제시한 ‘구독 서비스’라는 접근은 포털에 의한 새로운 상생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털이 주도하는 구독 실험은 2000년대 초반 언론사가 경험한 포털 종속의 재판으로 종속을 강화할 우려가 크다. 언론사가 자체 플랫폼을 강화하고 독자적인 구독자 확보에 나서는 등 언론사 주도의 탈포털 노력이 요구된다.

디지털 뉴스 생산과 유통의 시대에 언론사가 뉴스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할 때 한국의 저널리즘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사회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사회적 기능이 약화하면 민주주의 헌법 가치와 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 디지털 전환기에 언론사는 사명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생존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언론사에 주어진 선택지가 적어 보이고, 그 길이 요원해 보여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야 한다. 뉴욕타임스의 ‘구독 우선 비즈니스’가 성공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확신한 내부자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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