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우리 제발 선은 지키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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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사회부 경찰팀장

아침저녁 청명한 가을하늘이 눈부십니다. 중국과 호주 간의 무역 분쟁 덕분이라는데 미세먼지 걱정 없는 가을하늘, 정말 얼마 만인지요.

호젓한 가을 저녁을 만끽하고 싶어 퇴근 후에 종종 거실 창문을 열어둡니다만 매번 얼마 안 가 흥이 깨지더라고요. ‘부다다다~’ 잇달아 고막을 파고드는 배달 오토바이들의 불쾌한 배기음 탓입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의 오토바이는 2019년 13만 1308대이던 것이 2020년 13만 4814대로 늘었습니다. 그 기간 부산의 배달업체 소속 오토바이는 2230대이던 것이 4060대로 증가했습니다.

쉽게 말해, 부산의 전체 오토바이 수가 3% 남짓 늘어날 동안 배달업체 소속 오토바이는 80%가 넘게 늘어난 셈입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오토바이의 배기구 소음이 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동네방네 가리지 않는 오토바이 소음으로 부산 전체가 진저리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단속은 전무합니다. 이륜차 소음 측정 권한을 경찰이 아닌 지자체가 갖고 있는 까닭이죠. 당연히 단속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장에서는 오토바이 소음 단속은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단속 기준에 맞게 장비의 지상 높이를 설정하고 배기구와의 이격거리도 지킨 상태에서 측정해야 하니까요. 일반 단속보다 시간도 오래 걸려 또다른 민원을 낳기도 합니다.

어렵사리 단속해도 현행법상 이륜차의 배기음 단속 기준은 105㏈ 이하입니다. 고막을 때리는 자동차 경적소리 소음이 110㏈ 정도니까 실제로 현장에서 소음 기준치를 초과하는 오토바이를 적발하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구청마다 ‘사정이 이러니 어쩌겠소’ 하는 사이 배달 오토바이 소음은 끔찍한 집단 민원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해운대구청으로 올해만 1200건이 넘는 오토바이 소음 민원이 접수됐다 하니 말 다 했지요.

올해 이륜차 법규위반 단속이 4만 건이 넘습니다. 그러나 이 중 소음이나 배기구 불법 구조변경 단속 건수는 10건도 채 되지 않습니다. 현행법의 허점도 문제지만 지자체의 태만과 무관심도 한 몫 한다고 밖에 볼 수 없는거지요.

이달 초 해운대경찰서와 해운대구청이 이례적으로 유관기관 합동 단속에 나섰답니다. 처음 보는 오토바이 소음 단속에 길 가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더랍니다. 선을 넘은 오토바이 배기음에 시민의 마음이 얼마나 싸늘하게 돌아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겠지요.

‘위드 코로나’ 선언이 코 앞입니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힘든 나날이었나요. 즐거운 가족 외식 한번 못 하고 비대면 주문 배달에 매달린 게 2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 식당과 가정을 바쁘게 오가며 헌신해준 배달업계 종사자분들께는 고마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학교 앞, 아파트단지 안 할 것 없이 레이싱 서킷처럼 내달리는 배달 오토바이의 폭주를 업계 내부에서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 하면 코로나 시국이 끝난 뒤 전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달려온 배달업계에 대한 존중은 남아 있지 않을테니까요.

그러니 제발 우리, 선은 지키고 삽시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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