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당신의 도시는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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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인간을 존중하는 도시만이 시민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의 엔리케 페날로사 시장이 취임 연설 때 한 말이다. 인간을 존중하는 도시 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그는 당선 후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교통수단, 건축물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들에게 편의시설, 공원, 녹지를 갖춘 주택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미개발지를 매입했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2007년 시장선거 유세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행복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평등입니다. 어쩌면 소득의 평등보다 삶의 질에 있어 평등이 더 중요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는 환경, 자신이 따돌림당했다고 느끼지 않는 환경입니다”라고 외쳤다. 페날로사 시장은 최악의 거주 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던 보고타를 긍정의 도시로 바꾸기 위해 ‘행복한 도시 운동’을 전개했다.

 

집값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 커져

 사회주택 등 새로운 주거정책 절실

 인간다움 누리는 공간 보장해 줘야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는 언제나 의·식·주였다. 여기서 ‘주’는 ‘집 주(宙)’가 아니라 ‘살 주(住)’다. 단순히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뜻한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일컬은 것이다.

올해 3월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명으로 추산된다. 고독사 한 사람은 2016년 1820명에서 2019년 2536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와 고독사는 대개 빈곤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발생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혼가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집은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지켜 주지 못한다.

경제발전과 자산의 양극화로 인한 빈부 격차와 빈곤화 문제는 더욱 커져 간다. 특히 집값 상승과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더해진 한국주택토지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사건과 화천대유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은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부동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달 26일 독일 총선 때 베를린에서는 시의회 선거와 함께 부동산 국유화 투표가 실시됐다. ‘주택 24만 채 몰수’를 골자로 치러진 이날 선거는 찬성 56.4%로 가결됐다. 베를린은 원래 시민의 80% 이상이 임대주택에 사는데 최근 주택난이 심화하면서 임대료가 40% 가까이 상승했다. 자연히 부동산 문제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고 아파트 등 주택을 3000채 이상 보유한 민간 부동산 업체 10곳의 주택을 국유화로 전환해 공공 임대화하자는 ‘도이체 보넨 몰수 운동’으로 2019년부터 추진해 왔던 연대가 결실을 본 것이다. 몰수라고 해서 사유재산을 강제로 뺏는 게 아니라 시가 부동산 업체에 일정 금액을 지불한 주택을 부동산 시장 평균 가격보다 낮게 임대하자는 것이다. 부동산 매입 재정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 간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은 공공주택, 사회주택이 보편적이다. 19세기부터 종교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이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섰고 현재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민간 기업이나 비영리 조직에서도 다양한 사회주택을 공급한다. 사회주택이 가장 많은 네덜란드에서는 인구의 35%가 사회주택을 이용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정부 보조로 건설되는 신규 주택 중 80%는 사회주택으로 사용해야 한다. 20%는 시장에서 고가로 매매되고 80%는 보조금을 받는 사회주택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같은 품질이라 어떤 집이 임대주택인지 구분할 수 없다.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노인주택과 젊은 사람들의 주택을 조화롭게 배치해 노인들의 정서 안정에 기여하고,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은 1980년대부터 셰어하우스가 등장했다.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됨에 따라 사회주택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 영구임대주택이 도입됐다. 지금까지 LH 중심의 공공임대주택은 공급 위주의 저렴한 주택, 낙후된 공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5년부터 공공과 민간이 협업하는 사회주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부산시는 2019년 8월 3일에 ‘부산광역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조례가 공포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시청 홈페이지나 언론에서 부산의 사회주택 활성화와 관련된 자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집은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지만 그런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곳이다.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는 환경, 자신이 따돌림당했다고 느끼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행복한 도시는 시작된다. 지금 당신의 도시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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