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가족에게 보내는 ‘현실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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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한부모 생활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선배’ 한부모가족이 이제 막 한부모가족이 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직접 썼다. 위부터 차례로 각각 7년 차, 8년 차, 12년 차 한부모인 최세정(51·가명), 박세호(45·가명) 씨, 김혜진(49·가명) 씨의 진심이다.

“최근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의 하나로 사유리 씨의 가족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올 5월, 일부 시청자의 출연 반대 청원에 대한 제작진의 담담한 답변에 이어서 ‘자발적 비혼모’ 방송인 사유리의 육아 일상이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공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한부모 가구 비율은 7.3%로 급증하고 있으며 기존 가족 정책도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당시 제작진의 설명은 편견을 넘어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들어온 다양한 한부모가족의 현실을 요약한다.

부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한부모 생활코디네이터’는 이와 같은 다양한 정책의 하나다. ‘선배’ 한부모 8명이 또다른 한부모가족들에게 일 대 일 연계를 통해 맞춤 정보나 정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활코디네이터 김혜진(49·가명), 최세정(51·가명), 박세호(45·가명) 씨를 만났다. 앞서 2007년부터 동료 상담 ‘서포터즈’ 활동을 운영하고 있는 당사자 자조모임 단체 부산한부모가족센터의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부산건강가정지원센터 한부모 생활코디네이터
한부모 8명이 맞춤 정보·상담 등 지원 활동
부산 한부모가족 12만 가구 ‘전체의 8.5%’
불안정한 일자리·정보 격차 등 어려움 겪어
양육비 대지급법 등 정책과 정서적 지지 필요

내가 키운다

7월에는 최초의 ‘솔로 육아’ 리얼리티를 표방한 JTBC의 또다른 예능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도 시작됐다. ‘싱글맘’ 세 가족에 이어서 최근에는 최초의 ‘육아 대디’도 합류했다. 다양한 육아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은 호평을 받고 있지만, 이제 막 한부모가족에 진입한 양육자라면 육아는 ‘예능’보다 ‘다큐’에 가깝다.

한부모 12년 차인 김혜진 씨는 “이혼 후 처음으로 울었던 게 아들이 크면서 대중목욕탕을 데려가지 못하게 됐을 때”라고 기억했다. 자신과 다른 성별의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가족이 아니라면 아이와 목욕탕이나 워터파크를 가는 것 같은 일상이 더이상 쉽지 않은 상황의 난감함을 알기 어렵다. 일곱 살 때 아빠가 외국에 있는 게 아니라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엄마의 마음을 살피느라 너무 일찍 철든 것 같아 그것도 마음이 아프다.

김 씨는 우연히 홍보 현수막을 보고 부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를 찾았다가 생활코디네이터에 지원하게 됐다. 다른 한부모가족은 자신처럼 시행착오 없이 길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혼하고 막막할 때 한부모가족지원이라는 게 있다고 하는데 경차 한 대가 있어서 대상이 안 된대요. 힘들게 차를 팔고 신청했더니 양육수당 10만 원 지원이 다라고 해서 그 때부터 혼자서 열심히 정보를 찾아다녀야했거든요.”

부산의 한부모가족(비혼·이혼·사별 한부모+미혼자녀)은 12만 854가구로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양육수당(지금은 아동 1인당 월 10만~30만 원) 지원은 2019년 부산 기준으로 저소득 1만 6541세대로 일부에 그치고, 다른 지원사업도 신청해야 받을 수 있어 정보격차가 크다. 부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가 올 3월부터 보편적인 한부모가족을 대상으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부모가족사업지원단을 운영하는 배경이다.



지원에서 자립으로

한부모가족에게 양육은 일자리와 뗄 수 없는 주제다. “특히 모자가정이라면 경제적인 게 제일 힘들죠. 보조양육자가 없다면 애들을 두고 일을 하러 갈 수 없고, 소득기준을 조금만 넘어도 양육수당 지원을 못 받으니 어쩔 수 없이 불안정한 단기 일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여섯 살 때 한부모가 된 최세정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모든 국가 보조를 졸업하겠다’는 의지가 컸고, 결국 목표를 이뤘지만 유치원 때부터 학원 ‘뺑뺑이’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던 아이를 보는 게 마음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동네 복지관을 찾아가서 이것저것 공부하고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자립을 해냈고, 이제 열세 살이 된 아이도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면서 잘 따라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의 84.2%가 취업중이었지만 취업 한부모의 평균 소득은 202만 원으로 평균에 미치지 못한 근로빈곤층이었다. 그나마 상용근로자는 절반(52.4%)에 그쳤다. 전체의 78.8%가 전 배우자의 양육비를 못 받는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한 실직과 대면수업 중단은 타격이 더 컸다. 생활코디네이터 상담에서도 실직 상태에서 아동센터에도 자리가 없어 구직 활동도 못하고 있는 부자가정이 있었다.

부산한부모가족센터는 지난 23일 센터 교육관에서 열린 사례보고와 토론회에서 ‘한부모들이 원하는 한부모정책’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비양육자가 이행해야 할 양육비를 국가가 미리 지급하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대지급법 제정과 한부모가족의 특성을 반영한 긴급돌봄 지원 확대가 포함됐다.



귀를 기울이면

8년 차 한부모 박세호 씨는 부자가족이다. 사고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초등학생 딸 둘과 함께 한부모가족이 됐다. 막막함과 불안함에 잠도 오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밥을 해먹이고 머리를 묶어주고 BTS 새 앨범을 예약구매해주면서 무뚝뚝했던 아빠는 딸들과 친구 같은 아빠가 됐다. 생활코디네이터로 또다른 한부모 아빠를 만났을 때는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더니 상대도 마음을 서서히 열었다.

“포기하지 마세요.” 그도 포기할까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신이 그 증거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상담 가족에게 부산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정기 상담과 양육코칭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전 배우자와 연락을 하고 지낸다면 사춘기를 맞은 딸의 문제를 부탁해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건넸다.

한부모가족의 모습은 다양해지고 있다. 이임조 부산한부모가족센터 대표는 “센터 설립 초기에는 사별이 많았다가 이혼이 늘고, 부자가족이나 비혼가족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면서 “한부모가족을 가족의 한 형태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한부모가족 스스로도 더 적극적인 주체가 됐다”고 말했다. 양육수당 지원기준 확대와 양육비 이행 강제성을 높인 양육비이행법 개정 등은 한부모 당사자운동의 결실이다.

여러 한부모가족을 위한 맞춤 지원은 과제다. 특히 모든 한부모가족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상담 등의 영역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한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한부모 스스로 경제적인 자립과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야 아이에게도 좋은 환경이 됩니다.” 생활코디네이터들의 당부는 비슷하다.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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