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대한민국 벌거숭이 임금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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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안데르센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은 가식과 허위에 사로잡힌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를 경계하는 이야기다. 임금님은 왜 사기꾼 재단사의 거짓에 속아 백성들 앞에 벌거숭이가 되었을까. 첫째, 진실을 말하지 않고 아첨하는 신하들의 요설 때문이다. 둘째, 요설을 뱉는 신하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셋째, 판단이 흐려진 임금과 요설을 뱉는 신하의 집단적 사고 강화로 오도된 자기 확신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첨하는 신하들에 둘러싸인 군주
획일화한 집단 사고에 대한 경고

이견·반대 없는 역대 정권과 유사
‘제왕적 대통령’의 일방 통치 비극

권력자의 눈과 귀는 열려 있어야
미래 실패 위험, 최소화할 수 있어


신하 중 한 사람만 진실을 얘기했어도 백성들 앞에 벌거숭이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임금도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착각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현실 판단을 했다면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다. 대개 권력이 집중되고 획일화할수록 집단적 사고에 빠진다. ‘제왕적 대통령’이 진영에 둘러싸이면 이견과 반대의 목소리가 묻히고 판단은 흐려진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극단적 진영화와 집단적 사고로 인해 벌어지는 대한민국 정치와 통치의 폐해를 경고한다.

직선제 이후 역대 정권의 말로는 늘 비참했다. 노태우 정권은 비자금, 김영삼 정권은 IMF, 김대중 정권은 두 아들 비리, 노무현 정권은 부동산값 폭등, 이명박 정권은 측근 비리와 형님 월권, 박근혜 정권은 탄핵으로 끝을 맺었다. 문재인 정권도 부동산값 폭등과 정치 양극화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역대 정권의 실패는 이견과 반대 없는 제왕적 대통령의 일방적 통치로 인해 일어난 우리 정치의 비극이다.

한 나라의 정치는 대개 그 나라 국민들의 욕망 해소 방식, 근대국가 출발 때 정초된 정치 행태와 역사가 만들어낸 정치적 문화 습속의 영향을 받는다.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의 영국, 시민혁명으로 공화국을 세운 프랑스, 삼권분립의 연방공화국 미국, 공동체적 합의의 북유럽, 기본권을 최초로 규정한 바이마르헌법의 독일 등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나라들과 달리 우리는 조선 왕조를 거쳐 1987년 민주항쟁까지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정치 형태를 이어 왔다.

권력 집중과 극단적 진영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 정책이 생각이 비슷한 권력 내부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채택·추진되는 데 있다. 같은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반향실 효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으로 집단적 사고는 국가 정책 오류의 사전 예측과 이 오류가 초래할 위기에 대한 대비를 어렵게 해 실패 확률을 높인다. 정책 결정에 있어 다양한 이견과 반대가 공론을 통해 합의되지 못해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중세 로마 가톨릭에선 성인을 심의할 때 의도적으로 결점을 얘기하는 선의의 비판자인 ‘악마의 대변인’을 두었다. 1962년 세계 핵전쟁 위기를 불러온 쿠바 미사일 사태.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집단적 사고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전 정부의 고위직 인사까지 대책회의에 참여시켰다. 모든 통로를 열어 놓고 국가 위기 상황에 다양한 의견과 이견을 모았다. 특히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등 측근들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맡겨 집단적 사고에 빠지지 않고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치 지도자는 신이 아니고, 모든 걸 다 알 수도 없다. 대통령은 의견을 조율하고 취합하는 대표 정치인이고, 결단해야 하는 최종 판단자다. 반대 의견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할 줄 아는 열린 사고를 해야 한다. 이견을 배제한 채 생각이 같은 진영 내 사람들과 측근으로만 중요 정책을 논의하면 집단적 사고에 빠진다. 자기 신념과 진영에 갇힌 리더는 국민과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가공할 위험에 노출된다.

현 정부의 정책 실패는 청와대와 진영 내 측근에 의한 독선과 독단에서 비롯되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석권한 집권 세력이 견제가 약화한 상황에서 각종 입법 독주가 일어났고, 청와대에서 기획된 여러 정책이 일방적으로 강행되다시피 했다. 소득주도 성장은 현장을 잘 아는 관료와 야당의 이견을 경청했어야 했고, 탈원전은 학자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어야 했다. 역대 정권의 실패도 민주정치의 강점을 활용하지 못하고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민주주의는 악마의 대변인에 의한 견제를 제도화하여 벌거숭이 임금님을 사전에 방비하는 정치 체제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고, 실패를 불러올 변수는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최종 판단자인 대통령의 귀는 열려있어야 하고, 자기 신념과 확신을 경계해야 실패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야당까지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이제 본격적인 대권 가도가 펼쳐진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다음 대통령은 진영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견과 반대를 경청할 수 있는 열린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우린 언제까지 뻔히 예견된 실패를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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