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야성적인, 너무나 야성적인 고흐의 ‘구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고흐 ‘구두’, 살아 있는 생동감이 떼굴떼굴 굴러오는 듯
흔한 풍경들, 수용자 생애와 직접 연결돼 있는 느낌 줘
정직한 예술적 노고, 잃어버린 야성을 오늘날에도 배달
천재적 영감, 평소에 작가의 정신적 육체적 땀방울 결과

고흐의 ‘구두’. 예술가의 발품과 땀방울은 작품과 수용자들을 활짝 미소 짖게 하며 활짝 반기게 해준다. 부산일보DB 고흐의 ‘구두’. 예술가의 발품과 땀방울은 작품과 수용자들을 활짝 미소 짖게 하며 활짝 반기게 해준다. 부산일보DB

우리는 작가의 천재적인 영감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천재적인 표현력 역시 근접하기 어려운 것이란 오해를 한다. 일부 예술인들은 “수용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들이야말로 위대한 작품”이란 말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막상 이런 작품들을 대하면, 마치 죽은 것 같이 가끔 느껴지며, 정서가 현실감이 없다. 수용자 입장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지 않아 잡담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거기에 비해 살아 꿈틀거리며 감상자들 바로 곁에서 말을 거는 작품들도 많다. 고흐의 대표적인 시리즈 ‘구두’는 생동감이 떼굴떼굴 굴러와 많은 상상력과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작품 속 구두가 시골 농부의 것인지, 도시 노동자의 것인지, 고흐의 것인지, 아니면 같은 짝의 구두인지, 서로 다른 짝의 구두인지에 대해서 갖가지 상상들이 갈래를 친다. 매우 구상적인 작품인데도 경외감과 신비함을 불러온다, 왜 그럴까.

필자는 지게 같은 이젤을 어깨에 맨 채 자연을 누비고 돌아다니는 고흐의 ‘구두’를 상상하면서 그 생동감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대지의 젖과 땀이 흥건히 육화된 구두는 마치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고흐가 대지를 밟으면서 일으킨 움직임으로 땅속 지렁이는 일어났을 것이며, 해바라기와 삼나무, 밀밭, 강물은 그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바람과 강물과 구름을 구슬려서 말을 하게 했다.

대지에 ‘벌러덩’ 누워있으면, 모였다가 흩어지며, 때로는 머리 위를 비켜 움직이는 햇살의 미묘한 움직임을 관찰했을 것이다. 고흐는 나무와 식물 뿌리가 영양소를 탐색하듯, 야생의 영양소를 섭취하려는 생명체의 요구에 매우 정직했다. “느릅나무 아래의 해질 녘 서쪽 풍경은 가장 값진 화랑이다”라는 소로우의 말을 실천한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신비함을 몸에 과즙같이 담아온 고흐는 집에서 낡은 구두를 벗는다. 땀에 젖은 구두에 담긴 생명의 야생과 정직함을 미친 듯이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땀과 정직함, 그것이 고흐 ‘구두’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다. 고흐의 경건함과 근면성은 작품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 결과 감상자는 작품이 자기 생애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흐의 작품은 수많은 사람이 이미 봤을법한, 누군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면 경험했을 법한 장면이다. 그 친숙한 장면은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있는 생명체와 자연의 기본적 관계를 자극한다.

고흐는 낡은 ‘구두’로 자연 곳곳을 누비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흐는 발품을 들여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가 구두 그림을 즐겨 그린 것도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아를에서 고갱과의 사이가 벌어진 이유 역시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려는 고갱과의 마찰도 한몫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의 정신적, 육체적 땀방울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노고’는 익숙한 사물들을 ‘새로운 대상’으로 재탄생시켰다. 감상자는 활짝 미소 지으며 반갑게 악수하는 작품으로부터 예술적 공동체에 초대받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여기서 영감이란 게 갑자기 솟아난 게 아닌, 평소에 작가가 땀 흘린 사유와 노력의 결과란 것을 알게 된다. 위대한 작품이란 작가가 늘 유심히 관찰하며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에서 출발한다. 그 다음에 열린 상상력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마치 평소에 잘 일궈놓았던 땅에 씨를 뿌리듯이, 오래 동안 응축된 화산이 폭발하듯이, 모여 있던 물줄기가 폭포수가 되어 찰찰 흘러내리듯이, 예술적 영감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그런 이유로 살아 있는 작품은 과잉의 슬픔과 황홀이 아닌, 체화된 언어를 통해 작품 속에서 감상자와 함께 있다.

흔히 고흐를 고독한 예술가라고 한다. 그런데 대지에 발을 깊숙이 담군 채 자연과 수시로 대화했던 그는 전혀 고독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연의 구성원들과 대화하는 물활론적 사유에서 자연의 아우라를 강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고흐는 그래서일까. 유달리 별을 사랑한 화가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별이 무수히 빛나는 하늘, 그리고 신기루 같이 별빛을 감싸는 론강을 무척 사랑했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에는 프랑스 지도의 점 같이 닿을 수 없을까?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다”라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작업 구두를 신은 채 밤하늘의 론강을 무수히 배회하며 사색했을 것이다. 그 사색들과 느낌을 걸러 현실화된 정서를 우리들에게 강렬하게 남겼다.

고흐의 구두는 우리가 잃어버린, 잊어버린 야생의 유전자를 공공택배원 같이 오늘날에도 배달해준다. 체화시켜 걸러내고 걸러 낸 알맹이들은 잃어버린 고향의 조각들을 다시 발견하는 혜택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는 창조주를 실망시킨 못된 흙덩어리가 아닌, 먼 별들의 타오르는 심장에서 주조된 원자들로 이뤄진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게 고흐의 ‘구두“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박태성 객원기자 truepts39@naver.com/전 부산일보 논설위원·전 부산시민회관 본부장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P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