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한류의 세계화,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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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류 K콘텐츠의 미래, 쌍방향 문화교류에 있다

가위 대한민국 ‘소프트파워’의 대폭발이다.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K콘텐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과 올해 초 ‘미나리’의 성과에 이어 지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광풍이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중이다. 1년 전 ‘이날치 밴드’를 필두로 한 ‘조선 힙합’이 랩과 판소리 타령이 뒤섞인 독자적인 가풍(歌風)으로 세계를 홀린 바 있다. 두말이 필요 없는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이미 세계 팝 음악계의 전설이 됐다. 음악과 영화, 드라마가 다가 아니다. 게임과 웹툰, 음식과 패션, 관광, 화장품, 디자인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주류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 파다하다. 다시 화두로 뜨고 있는 ‘한류의 세계화’, 어떻게 봐야 할까.

K팝·BTS·오징어 게임·기생충…
세계 문화 주류로 부상한 한국
산업화·민주화에 IT 합쳐진 결실

“한류는 소프트파워·선한 에너지”
세계 언론과 학자들 잇단 진단
편협한 민족주의 빠지면 미래 없어
인류 전체 문화창달 기여하려면
고품격 양질 콘텐츠 지속 생산
나라와 나라 ‘열린 소통’ 이끌어
공감 나누는 ‘교류의 장’ 돼야



■한류 물줄기의 거대화·다변화

한류(韓流)는 1990년대 말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중국에서 붙인 용어다. 전문가들은 크게 네 단계로 분류한다. ‘제1대 한류’는 19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 영상 콘텐츠가 선두주자였다. 일본, 동남아, 중국에 한류가 퍼져 나간 첫 단계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제2대 한류’다. K팝이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권을 넘어 중남미, 중동, 유럽과 북미 일부까지 확산됐다. ‘제3대 한류’는 2010년대 초반부터 2019년까지로, 한류의 본격적인 세계화가 이뤄진 시기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한식, 여행, 복식, 화장품, 한글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됐다.

2020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흐름은 ‘제4대 한류’ 혹은 ‘신한류’로 분류된다. 장르가 더욱 다양해지고 연관 산업이 결합하며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까지 가세하는 특징이 있다. ‘오징어 게임’ 열풍은 전 세계를 휩쓰는 ‘K콘텐츠 쓰나미’의 최신 물결인 셈이다.



■전 세계 언론·학자들도 들썩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파워’ 개념을 만든 석학이다. 소프트파워는 강제가 아닌 ‘매력’을 통해 얻는 ‘부드러운’ 권력. 최근 그는 “한국이야말로 문화의 소프트파워가 잘 갖춰져 있다”며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공 스토리’를 보여 주고 있다”고 했다. 한류에는 패권적 요소가 없고 닮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많다는 평가다.

너도나도 한류 분석에 나서고 있는 세계 언론들의 진단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한국 문화 콘텐츠가 유럽과 미국 시장을 정복했다. 서양인들은 동양의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거나 유럽과 미국은 동양 문화에 비호감적이라는 편견을 정확하게 부순 사례가 됐다.”(중국 시나닷컴)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K팝에서부터 최대의 쇼라고 극찬 받은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팬들이 탐내는 오락거리를 쏟아 냈다.”(미국 CNN). “오징어 게임의 열풍과 함께 한류의 성공은 영국 록 그룹 비틀스의 성공적 미국 진출을 뜻하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비견할 만하다.”(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한국의 영향력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까지 이르렀다.”(영국 BBC)



■‘소프트파워’ 어디서 왔나

세계를 매혹시킨 한류의 근원은 무얼까. 중국 역사서 중 ‘위지 동이전’의 기록들을 보면, 우리 겨레가 수천 년 전부터 무리 지어 놀고 춤추는 데 남다른 열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핵심어가 ‘신명’과 ‘흥’일 테다. 몸속에 그 DNA가 흐르고 있다가 질곡의 역사를 딛고 세상 밖으로 분출했으니, 그것이 한류다. “한반도가 사상과 문화에서 참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시인 김지하)했다고 보는 것이다. 거기에 인터넷과 유튜브·넷플릭스 등을 품는 IT 강국의 면모가 시너지 효과를 불렀다.

그렇다고 원초적 에너지가 모두 세계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특별한 경험이 소중하다. 압축적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은 서양에게는 서구화된 동양, 동양권에는 서구화에 대한 저항을 줄여주는 나라가 됐다. 말하자면 서구와 동양, 두 문화권을 이어 주는 고리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드라마 ‘대장금’의 스타 이영애가 홍콩 언론에 이렇게 말한 적 있다. “민주화가 한류의 성세(盛世)를 만들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얻은 권위·관습에 대한 저항, 금기를 넘는 창의성 발휘, 정의·공정의 가치에 대한 지향, 이런 것들이 한류의 밑거름이 됐다는 뜻이겠다.



■백범이 염원한 문화 강국의 길

철학자 칸트가 말했듯, 문화의 본질이자 최종적 단계는 ‘도덕화’다. 물질의 충족을 넘어 정신의 고양에 의해 진입할 수 있는 단계다. 문화를 상품으로 수출해 수익을 거두려는 경제적 관점만으로는 고립에 빠질 뿐이다. ‘문화 상품의 세계화’가 ‘문화의 세계화’일 수 없다. 한류는 문화·사회·경제적 가치들의 종합적 구현인 까닭이다.

일찍이 높은 문화의 힘을 염원한 이는 백범 김구다.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선생의 선구적 안목을 좇으면, ‘문화 강국’으로 가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아시아가 아닌 서유럽, 본고장의 그들이 열광했다’는 따위의 국내 보도를 접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시선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에 대한 동경 혹은 콤플렉스를 떨쳐 내야 한다. 정반대 쪽의 유혹도 마찬가지다. 자문화 중심주의나 편협한 민족주의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한국을 세계 문화수도로 건설하자’는 식의 구호는 중심과 변방을 상정한 힘의 논리다. 우리에게 배타적인 욕망과 제국주의적 발상이 도사린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 한류의 미래는 소통과 공감

한류는 선(善)한 에너지다. 이상적인 꿈은 문화의 품격에 충실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인류 문화의 창달에 기여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의 세계화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문화와의 열린 소통을 이끄는 방향이어야 한다. “한국과 세계, 나라와 나라, 소통 주체들이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편적 공감을 나누는 상호 교류의 마당.” 이는 한류 전문가와 학자들의 이구동성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불평등과 불공정성을 줄여 한국 사회 자체를 정의롭고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과 함께 가야 할 과제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민족의 압제 속에서 깨달음에 닿았던 백범의 꿈. 그 열매가 영글어 간다. 김건수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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