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가보니…노잼 도시?빅잼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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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컨대 ‘노잼(재미없다는 뜻) 도시’라는 꼬리표는 ‘서울 공화국’의 시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수도권과 영호남을 잇는 삼남의 관문이며 바다나 큰 산과 강이 없는 분지 도시다 보니 길목 정도로 여기고 지나치는 시선 말이다. 공무원과 이공계 박사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중앙행정기관과 연구소가 밀집한 것도 영향이 있겠다. 결국 이 도시는 2019년 공식 소셜미디어에 어떤 경로든 ‘성심당’으로 귀결되는 ‘노잼 투어 알고리즘’을 공개하며 화제가 되기에 이르는데, 실은 교통 편하고 쾌적한 대도시의 장점에 역사, 자연, 문화를 곁들인 여행이 여기에 있다. 대전이다.

일제강점기 관사촌 고친 ‘테미오래’
근대건축에 정원 딸린 복합예술공간

엑스포 주차장 터에 만든 한밭수목원
24개 주제별 공간에 다양한 산책길

미술가 엘리아슨의 대형 설치 작품
엑스포타워를 특별하게 만든 전시물

■30년대 관사촌을 거닐다

대전은 1905년 경부철도 개통과 함께 한 번, 1932년 충청남도청사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또 한 번 근대도시로 도약한다. 테미오래는 당시 충남도청의 일본인 관료 가족을 위해 조성된 관사촌으로, 2013년 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시가 매입해 2019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름은 테를 둘러 쌓은 작은 산성이라는 뜻의 ‘테미’와 한동네 몇 집이 이웃으로 사는 구역이라는 뜻의 ‘오래’를 더한 말이다. 정면에 2층 주택 도지사공관이, 양쪽으로 나즈막한 관사 9개동이 줄지어선 플라타너스 골목으로, 지금은 대전마을기업연합회가 각종 전시와 창작공간, 스튜디오 등으로 운영한다.

도지사공관의 근대 관사 건축 관련, 1호 관사의 대전 철도 관련 전시는 관사촌과 도시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고, 성심당 초기 밀가루 반죽기 같은 볼거리도 있지만 주인공은 역시 공간이다. 붉은 벽돌과 낮은 경사의 푸른 기와 지붕 같은 외관은 물론 정원 전망의 응접실 곡면창과 중간복도, 수납 툇마루, 반침 같은 실내 구조까지 일본식과 아르데코 양식이 섞인 30년대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디디면서 보는 감흥이 있다. 도지사공관은 대전시 문화재자료, 관사 4개동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2층 규모로 가장 큰 도지사공관은 영화 ‘더킹’, ‘마약왕’,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도 나왔다.

전시만 보고 가면 테미오래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관사 뒤편으로 집만큼이나 오래된 정원들이 쪽문을 통해 이어지는데, 가장 너른 도지사공관 정원에서 굽이굽이 뻗은 노송을 보고 앉아있으면 고즈넉한 한때가 흘러간다.



■도심 속 수목원에서 가을을

원도심의 테미오래를 떠나 지금의 도심인 둔산신도시로 간다. 1999년 이 곳으로 옮겨온 대전시청을 지나면 2년 앞서 조성된 정부대전청사가 이어지고, 그 뒤로 전국 최대의 도심 수목원 한밭수목원이 있다. 지금의 푸릇푸릇한 녹지를 보면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아스팔트 광장과 주차장이었던 부지다. 여기에 대전지하철 공사 당시 나온 흙과 주변 산의 식생을 옮겨와 조성했다.

한밭수목원은 총 38만㎡ 규모에 24개 주제별 공간이 있어서 대전 시민에게 물어보면 백 명이면 백 개의 산책 코스가 나올 것이다. 한번에 다 둘러보려면 체력이 바닥날테니 욕심을 내기보다 코스를 정해서 보는 게 좋다. 엑스포시민광장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각각 2005년과 2009년에 차례로 개원한 서원과 동원이 있다. 동원 앞쪽으로는 2011년 열대식물원도 문을 열었다. 동원에는 인공호수 주변으로 정원 기능의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면, 서원에는 숲길을 거니는 것 같은 산책길이 중심이다. 봄·여름에는 장미원과 다양한 꽃밭이 있는 동원에 인파가 몰리고, 가을 단풍 구경에는 단풍·신갈나무숲이 있는 서원이 북적인다. 겨울에 간다면 열대 우림의 거대한 야자수와 아열대의 화려한 꽃과 과일, 물 속에 뿌리 내리는 맹그로브 식물까지 만날 수 있는 열대식물원이 있는데, 사철 언제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위로가 되는 식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서원 앞에 대전시립미술관과 나란히 있는 이응노미술관은 수목원 산책 전후에 들르기 좋다. 충남 홍성 출생의 고암 이응노 화백을 기념한 미술관에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아름다운 전시관과 커피가 맛있는 미술관 카페가 있다.



■전망대가 전시관이 되는 법

한밭수목원 뒤로는 금강에 유입되는 하천 갑천이 흐르고 그 너머가 바로 1993년 대전엑스포의 무대인 엑스포과학공원 부지다. 여기에 이른바 ‘엑스포 재창조 사업’을 거쳐서 올 8월 말 대전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점과 타워동 엑스포타워가 함께 들어섰다.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된 42층 마천루 꼭대기에 독특한 전망대 ‘디 아트 스페이스 193’이 개관한 건 9월이다.

‘디 아트 스페이스 193’은 예술과 공간, 그리고 대전엑스포 개최연도이자 엑스포타워의 높이(193m)를 더한 이름이다. 백화점과 연결된 타워동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50초 만에 40층에 먼저 도착한다. 정면(남쪽)으로는 방금 지나온 갑천과 한밭수목원 너머로 행정·업무·상업공간이 밀집한 도심 전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엑스포의 상징으로 남은 한빛탑부터 유성온천과 계룡산, 대덕연구단지까지 막힘 없이 드넓게 펼쳐진다.

대전 시내 전망도 멋지지만 이 전망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현대미술계의 슈퍼스타 중 하나인 설치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이다. 40층에서 4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 천장에 매달린 다면체와 42층 전체에 배치된 터널과 돔 형식의 작품 6점까지 총 7점을 아우르는 전시의 제목은 ‘살아있는 전시관’이다. 과학과 예술을 결합하는 그의 작업은 공간의 상징성과 맥이 닿아있다. 자연광을 투과하는 거울과 만화경, ‘카메라 옵스큐라’ 속 실시간 대전 풍경, 돔 안에서는 꽉 짜인 20면체 입체로, 밖에서는 무질서한 선으로 보이는 작품 등은 주변 환경과 관람객을 작품에 참여시킴으로써 “예술작품이란 교차하는 여러 궤적들의 만남”이라는 작가의 예술관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등등

그밖에도 즐길 거리는 많다. 대덕연구단지에서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내의 국내 유일 지질 전문 박물관 지질박물관을 들를 만하다. 갑옷 공룡 에드몬토니아를 쫓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복제 표본과 미국 몬태나주 후기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마이아사우라의 진품 표본, 1943년 전남 고흥에서 발견된 두원운석 실물 등을 볼 수 있고, 넓은 잔디밭 야외전시장은 대형 암석과 광물, 화석 표본 사이를 거닐며 쉬어가기 좋다.

대전시의 2019년 대전관광 실태조사에서 관광객 방문과 추천장소, 음식 부문 1위를 석권한 성심당은 일부러 가려고 하지 않아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1956년 설립된 성심당은 대전 외에는 점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전국 택배가 된다고 해도 갓 나온 튀김소보로와 따듯한 판타롱부추빵은 오직 대전에서만 먹을 수 있다. 중구의 본점뿐 아니라 대전역사, 엑스포타워 인근 대전컨벤션센터 등에도 매장이 있다.

칼국수축제가 있을 만큼 다양한 개성의 칼국수와 고기 없이 두부만 들어가는 두부 두루치기도 대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먹거리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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