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고인 물 된 수계관리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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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사회부

고인 물은 썩는다. 수질을 관리하는 제도 역시 방치되고 고이면, 상하기 마련이다.

수도요금 고지서를 펼쳐보면, 상하수도 요금 외 ‘물이용부담금’이라는 항목이 있다. 낙동강 물을 쓰는 가정은 t당 170원, 보통 연 3만~4만 원 정도 부담금을 낸다. 이렇게 한 해 부산에서만 500억~550억 원, 낙동권 전체 수계에서 2300억~2500억 원가량이 걷힌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4조 원 가까이 걷혔다.

물이용부담금은 세금이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납세 의무의 대상은 아니지만, 2002년부터 우리는 낙동강을 살리는 데 쓰라며 부담금을 내고 있다. 이 돈이 모여 만들어진 게 ‘낙동강 수계관리기금’이다. 기금 조성 당시에는 낙동강 수질 문제가 너무 심각해,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낙동강 수질 개선 자금을 모으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일단 너무 더디게 진행되던 상하수도 설치를 우선 순위로 기금 운영이 설계됐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낙동강은 불안하다. 상하수도 보급률이 90%를 넘겼지만, 기초환경시설 관련이 여전히 1순위 지출 항목이다. 그 덕에 이들 시설의 설치·운영 의무가 있는 행정기관들이 부담을 덜고 있다. 토지매수사업은 관련 지침이 헐거운 상태로 시작됐는데, 크게 개선된 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오염과 무관한 토지 매입도 잦다. 기금 관련 행정 인프라 부족은 여전해, 주민지원사업의 경우 감시나 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낭비성 사업에 수십억 원이 투입되기도 하고, 지원금이 쌈짓돈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지금 기금 운영의 비효율성은 처음 설계된 운영 틀이 계속 유지된 결과다. 해를 거듭하면서 제도의 미진한 부분을 채우고 정비해 나가야 했는데, 이런 작업이 부족했다. 원래 시민사회의 관심과 감시가 부족한 영역에서 행정 시스템 스스로 개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마치 고인 물처럼 제도가 운영된다.

지난해부터 낙동강 수계관리기금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행히 수계기금의 틀을 재정립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환경부가 3개월에 걸쳐 진행 중인 ‘낙동강 수계관리기금 제도 개선을 위한 포럼’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포럼을 계기로 기금 운영에 시민사회의 발언권이 커진다면 괜찮은 성과가 될 것이다. 그렇게 기금 운영이 폐쇄성이 깨지면, 시민사회의 관심이 올라가고 기금 개선 작업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고인 물이 다시 흐르는 것이다. k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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