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생의 한가운데 있다’ 낮고 울림 있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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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은 바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저자가 이 시대의 대표 지성 이어령(전 문화부 장관)을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지 않아.” 이어령은 이렇게 말하며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책을 통해 쏟아놓는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 옆에 둔 이어령
삶·죽음에 대한 얘기 담은 특별한 수업
사랑·용서·종교 등 다양한 주제 다뤄
“항상 바뀌는 마음, 육체가 지탱해 줘”

막막해 울고 있는 내게 “왜 그리 슬피 우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주는 스승, 그런 스승이 곁에 있다면. 혹은 멘토나 롤 모델이 아니라 정확하게 호명할 수 있는 스승이 곁에 있다면. 시인 이성복은 ‘스승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생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스승이라고. 죽음의 강을 건널 때 겁먹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안내하는 자.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몽테뉴가 그랬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분의 스승이 있다. 바로 이어령이다. 저자는 그를 스승이라 칭한다. 아마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의 안내자 같은 영성에 빚지고 있는지 모른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이어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마치 현인(賢人)처럼 말이다.

그는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남아 있는 세대를 위해 마치 각혈하듯 자신이 가진 모든 지혜를 쏟아낸다. “나는 이제부터 자네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

서양에서는 지금까지 영과 육이라는 이원론을 가지고 삶과 죽음을 설명했다면, 이어령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 이렇게 삼원론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한다. 그게 바로 ‘유리컵의 비유’다.

“컵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비어 있다. 그게 보이드(void)이다. 그런데 비어 있으면 그 뚫린 바깥 면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주까지. 그게 영혼이다. 그런데 빈 컵에 물을 따랐다. 액체가 들어가 비운 면을 채우는데, 이게 마인드(마음)이다. 우리 마음은 항상 욕망에 따라 바뀌는데, 컵 속 액체는 때론 보이차도 되고, 와인도 된다. 똑같은 육체인데 한 번도 같지 않다. 우리 마음이 늘 이와 같다. 한데 이 마인드를 지탱해 주는 것은 뭘까. 바로 컵(육체)이다. 컵 없으면 쏟아지고 흩어진다.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내 몸은 액체로 채워져 있다. 그 액체가 마인드다. 그러니 화도 나고 환희도 느낀다. 컵이 깨지면(죽으면) 차갑고 뜨겁던 물은 다 사라진다. 컵도 원래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에 있던 컵 안의 보이드(공허를 채웠던 영혼)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컵 하나로 선생님(이어령)은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혼을 간단하게 풀어버렸다며 놀라워한다.

이어령은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하라’, ‘스스로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라’라는 말로 영성을 깨운다.

이런 얘기도 한다.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이어령은 무엇보다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정오의 분수 속에, 한낮의 정적 속에, 시끄러운 운동장과 텅 빈 교실 사이, 매미 떼의 울음이 끊긴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예민한 살갗으로 생과 사의 엷은 막을 통과하고 있다고.

또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으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라는 거대한 동굴을 들여다보고 그 벽에 삶이라는 빛의 열매를 드리우는 능력. 그가 가진 특별한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슬픈 꿈을 꾸었느냐?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책은 죽음 혹은 삶에 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죽어가는 노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마치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책이랄까.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 터이다. 김지수 지음/열림원/320쪽/1만 65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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