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일본 정년 70세, 한국도 따라갈까
정부, 2022년 고용 연장 사회적 논의
충분한 준비기간 두고 점진적 추진을
정년을 아예 없앤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 기업 노지마의 채용 공고. 노지마 홈페이지
■일, 종신고용이 뭔지 보여 줄게
지금은 빛이 좀 바랬지만 '종신고용'은 일본식 경영의 특징이다. 일본의 가전제품 판매 기업인 '노지마'는 올해 종신고용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 줬다. 노지마는 지난해 80세까지 정년을 늘려 화제가 된 데 그치지 않고, 지난달부터 정년을 아예 없앴다. 건강에 문제가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풍부한 경험을 갖춘 시니어 직원을 귀중한 자산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세계 최대 지퍼 제조회사인 와이케이케이(YKK)도 지난 4월 65세이던 정년을 폐지했다. 정년을 연장하는 움직임이 이처럼 확산 추세다. 지난 4월부터 기업이 노동자의 취업 기회를 70세까지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을 의무화한 '고령자고용안정법' 시행이 촉매제가 되었다. 강제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이 법을 70세 정년이 일반화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은 2013년부터 정년이 65세였다. 일본에서 65세 이상의 비율은 현재 29.1%로 전 세계에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다. 2030년이면 노동 수요가 공급을 644만 명이나 웃돌 전망이다. 인력 부족이 심각하니 고령자를 쓸 수밖에 없고, 결국 정년 연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70세 이상 고령자도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본 기업이 현재 31.5%나 된다고 한다.
용두산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 부산일보DB
■2025년 한국 초고령사회 진입
일본의 정년 연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15~20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의 인구구조를 따라가고 있어서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부산은 올해 특·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나라의 15.7%. 2025년에는 65세 이상이 20.3%에 달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3736만이던 생산인구는 2040년에는 2865만까지 줄어든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경제도 복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청년들이 없어서 사람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다. 한국도 2027~2028년이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의 성장 동력이 저하되고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지자 정년 연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현재 만 62세에서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로 상향 조정 중이다. 지금처럼 만 60세에 퇴직하면 연금 수령 때까지 곤궁한 처지로 살아야 하는 '경제적 절벽'이 생긴다. 최소한 연금 수급 연령까지는 일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60세 정년을 유지할 경우에는 멀지 않아 인구의 절반은 은퇴자가 될 것이다.
청년 채용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부산일보 DB
■정부, 계속고용제도 시동 걸다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평균수명의 연장과 급격한 고령화, 경제 수준과 고용조건 등을 고려했을 때 육체노동자 평균 노동가동연한(노동에 종사해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령의 상한)을 60세에서 65세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60세 이상'으로 규정된 현행 정년 규정의 상향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판결이었다.
지난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각 부처 업무보고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려면 고용 연장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군불을 때다 지난해 정년 연장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낸 것이다. 정부 내 인구구조 태스크포스팀에서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사업장에서 재고용 등 다양한 고용연장 방안을 선택할 수 있는 계속고용제도를 2022년부터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①재고용(퇴직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 ②정년 연장(60세 이후로 정년 늦추기) ③정년 폐지(정년 나이를 없애 특별한 근로계약 해지 사유가 없는 한 계속 고용) 등 다양한 고용연장 방식을 고르게 했다. 기업에 선택권을 주는 것 같지만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만 택하라는 의미 같다.
완성차 3사 노조 위원장들이 국회 앞에서 정년 연장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제공
■청년 고용 줄면 어떡하나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영계는 정년 연장으로 인한 기업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차·한국GM 등 완성차 3사 노조 위원장들의 정년 65세 법제화 요구는 이런 고민을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정년 연장의 혜택은 안정적인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은 뜨거운 논쟁을 유발한다. 실제로 MZ세대 현장직 사원이 완성차 3개사 정년연장 법제화에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아직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대기업의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다소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년 일자리와 노년 일자리는 구분된다는 시각도 있다. 대기업이 정년을 연장하면 과거에 성과급이 전 사업장에 퍼진 것처럼 영세 사업장에도 자연스럽게 정년 연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 사전 정지 작업 꼼꼼히 거쳐야
정년 연장은 우리가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임금체계 개편, 고령자 직무설계, 기업 내 연령 다양성 관리 방안과 같은 토대를 먼저 마련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년을 연장하면 고용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일본 정부도 제도화에 앞서 정년 연장에 필요한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 임금체계 개편, 근로계약법 도입과 같은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두고 기업과 근로자가 제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연금 수급 연령이 65세로 상향되는 2033년까지 점진적으로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OECD는 임금피크제의 경우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정부가 고용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는 2022년이 다가오고 있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