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32. 내가 ‘거래線’으로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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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우리 수입선이 중국으로 한정이 되고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위기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일부에서는 공급선이 독점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차이나 리스크’라는 이야기가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7일 오후 국회에서 민주당 요소수 관련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한데, 저기 나온 ‘수입선’은 우리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은 말. 사전에 ‘輸入線’이라는 말이 실려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은 없다. 저건 일본말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輸入先(수입선)’이라 쓰는데, 접미사 ‘先(さき·사키)’은 ‘상대’라는 뜻으로 쓴다. 우리말에는 없는 용법인 것.

한데, ‘수입선’이라 쓰는 사람을 탓할 것도 없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열린 국어사전 <우리말샘>을 보자.

*수입선다변화(輸入先多邊化): 무역 역조 현상이 심한 특정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하는 일.

언론에서 내내 ‘수입선 다변화’를 ‘수입국 다변화/수입처 다변화’로 고치고 있었는데, 국립국어원이 이렇게 냉큼 올림말로 잡고 만 것. 하지만 이건 문제가 있다. 아래는 국립국어원이 2005년에 펴낸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에 실린 내용.

‘수입선[輸入先, ゆにゅうさき] →수입처, 수입국(우리나라 쌀의 주요 수입선은 미국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누리집 ‘온라인가나다’ 상담 사례 모음에서 ‘‘거래선’은 맞는 말인가요?’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거래처’로 다듬어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거래선’은 ‘거래(去來)’에다가 장사나 교섭의 상대를 나타내는 ‘선(先)’을 붙여 만든 말인데, 여기서 ‘선(先)’은 일본의 고유어를 한자의 훈을 빌려 표기한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일본식 한자어 ‘선’이 결합한 ‘거래선’, ‘구입선’, ‘수입선’ 등은 ‘거래처’, ‘구입처’, ‘수입처’ 등으로 다듬어졌습니다.(2020. 1. 16.)’

즉, 일본어 투 용어이니 쓰지 말라던 국립국어원이, 일본식 한자어이니 다듬어 쓰라던 국립국어원이 변변한 설명도 없이 <우리말샘>에 저렇게 올려놓은 것. 게다가, 온라인가나다에 올린 저 답변이 무색하게도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엔 또 이렇게 올라 있다.

*거래선(去來先): ①돈이나 물건 따위를 계속 거래하는 곳.(거래선을 개척하다./거래선을 뚫다./거래선을 트다./이 작은 시계 수리 포도 그들의 장물을 취급하는 거래선에 틀림없다고 느껴졌다.<최인호, 지구인>) ②모든 거래의 상대편. =거래편.

이거, 뭔가? 싶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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